종이새가 깐 알
7월의 뙤약볕에 땅이 후끈 달아올라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듯 했다. 1년 전만 해도 방학도 없이 통학단별로 꼴을 베느라고 비지땀을 흘렸는데, 해방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아이스케키 얼음 과자!”
과자집이 아이스케키 집으로 변하자, 이 신기한 얼음 과자를 사먹기 위해 줄을 섰고, 마침내 행상까지 등장하여 아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영식이는 아이스케키를 한 개씩 사서 친구들에게 인심 좋게 쥐어주었다.
“아이 새끼야 얼렁 가자!”
재호는 처음으로 얼음 과자를 빨아먹으면서, 영식이를 따라 탐진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신흥리로 가는 길목에는, 흐르는 강물을 돌무더기로 막아 둑을 쌓고 보를 만들었는데, 괸 물이 뱅뱅 돌면서 꽤 깊은 소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백년소’라고 불렀다. 가끔 이 소에서 사람이 빠져 죽어, 아이들 사이에서는 물귀신이 사는 곳이라며 꺼려했지만, 이제는 얕은 아랫강이나 샛강에서 계집애들도 낀 조무라기들과 함께 섞여 물장구나 치는 그런 철부지 아이들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맑은 물이 시원스럽게 넘쳐 흘러내리는 봇둑을 지나 벌판 쪽으로 몰려갔다. 잡초들 사이에는 저절로 난 개똥참외도 숨어있었으며, 조금 더 들어가면 수박밭도 있었다. 달맞이꽃이 길게 줄 서있는 쪽으로는 모래 자갈밭도 펼쳐져 있었는데, 모래밭 쪽에는 물이 얕아 수영에 자신 없는 아이들이 멱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돌멩이들이 뜨겁게 달아올라 발바닥이 화끈화끈했다. 자갈밭 사이사이에는 가냘파 보이는 여뀌와 패랭이가 피어있었다. 찬 눈 속에서도 파랗게 자라는 보리, 찬 얼음 밑에서도 파란 이끼가 대견해 보이지만, 뜨겁게 달궈진 자갈사이에서도 까딱 않고 피어있는 게 대견스러웠다. 강둑을 타고 뻗어있는 호박 넌출에서 숫꽃 한 송이를 꺾어 쥔 영식이는 암꽃 속에 거꾸로 꽂아 놓더니,
“기분 좋겄다!”
하면서 큰 소리로 웃어대었다. 늘 엉뚱한 짓을 잘 하는 영식이가 오늘은 또 무슨 짓을 할 것인가? 팬티도 입지 않은 채 윗도리를 벗어든 아이들은 덜름한 바지 하나만 내리면 벌거숭이였다.
‘아!’
재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영식이의 불두덩 위에는 새까만 불곳(불거웃)이 덥수룩하고, 성기는 어른들 마냥 홀랑 까진 채 축 늘어져있는 게 아닌가? 종배도 영식이 보다는 못했지만 제법 털이 듬성듬성 나있고, 귀두가 약간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리고 두세 개 나있는 젖털을 만지작거리며 꽤 자랑스러워했다.
“요런 젖비린내 나는 쪼무래기들 데리고 다니니께 챙피하다 챙피 해......”
영식이는 종배더러 누가 좆심이 센지 오줌 싸기로 내기를 하자며 대들었다.
“ 어쭈, 그래 해보자!”
두 녀석들은 무지개를 그리며 오줌을 싸갈기는데, 누구라 할 것 없이 그게 그것이었지만, 서로 자기 오줌 줄기가 멀리 갔노라고 우기는 꼴이 참 우스꽝스러웠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은 킬킬대며 다음에는 또 어떤 갑작스런 행동이 나올지 궁금해 하는데
“요 눔들아, 느그들은 아즉 자지들이여. 좆이 될라믄 당아 멀었다. 멀어...”
“...........”
“재호 넌 자라 자지여, 길남이는 뻔데기 , 정길인 꼬치 자지고.”
“그믄 넌 먼 자지냐?”
“난 좆이지야. 왕방울 좆. 종배 넌 그냥 방울 좆이고...”
“난 워낭이다.”
“당 멀었어. 솜털 갖곤 안돼. 철모도 안 쓴 우멍거지 놈이...”
종배가 영식이를 뭘로 보나 당할 수 있으랴. 재호는 스스로 아이 티를 못 벗어났다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주눅이 들었다.
“느그들 같은 자지들은 여그서만 놀아 잉. 깊은 데 들어가믄 물 귀신이 끌어가니께.”
영식이는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더니 물개처럼 익숙하게 헤엄을 쳤다. 큰 바위들을 감돌며 흐르는 건너편에서는 한동안 센 물살에 밀린 듯 했으나, 끝끝내 황소바위 등위로 우뚝 올라섰다. 종배도 그 뒤를 따랐다. 얕은 물가에서 개구리헤엄이나 치며 노는 아이들은 참으로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은 물개가 되어 영식이를 뒤좇아 갔으나, 몇 걸음 걸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차가운 물이 가슴팍에 차 올라 겁이 났다. 몇 길이나 되는지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재호 같은 아이들이 헤엄치기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으, 시원하다!”
영식이와 종배는 개선장군처럼 커다란 성기를 쑥 내밀고, 네 활개를 펴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개구리처럼 풍덩 빠져들더니, 물 속으로 헤엄쳐 어느새 이 쪽에 머리를 내밀었다. 대단한 수영 솜씨에 기가 질려 있는데, 갑자기 재호에게 덤벼들더니 부자지 사이로 손을 넣고 거꾸로 세워 물 속에 내동댕이치는 게 아닌가?
“하프 하프....”
재호는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지만 정말 죽는 줄만 알았다. 물을 몇 모금을 마셨는지, 하늘인지 냇물인지 머리가 핑핑 돌아서 한참 만에야 눈을 제대로 떴다.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와 이제서야 살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곧 물가로 빠져 나왔다. 옆에 있던 길남이와 정길이가 질겁하며 피했으나 영식이와 종배의 억센 팔뚝에 붙잡혀 모두들 역시 혼줄이 났다. 어미 개가 강아지를 골리 듯 아이들을 실컷 골려준 그들은
“물 묵어봐야 헤엄 배우는기여”
하며 자랑스럽게 또 바위로 헤엄쳐 갔다. 삐비정 뒷산 그늘이 드리워져서 흔들리는 물 그림자가 참 아름다웠으나, 물이 너무 차가워 금방 입술이 시퍼렇게 된 채 달달 떨다가, 이내 자갈밭으로 나왔다. 그러나 곧 물이 마르고 몸이 달아올라 또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철재 어이, 여그 다리 밑에 가물치 한 마리, 미기 한 마리, 미꾸락지 시 마리 있네, 이리 오소!”
저만큼 떨어진 남생이바위 위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철재가 눈에 들어와 영식이는 손을 흔들며 큰 소리를 쳤다. 철재도 알아차렸는지 손을 내저었다. 훨씬 선배였지만 영식이는 늘 친구처럼 대했다. 그는 낚시광이었다.
커다란 뭉게 구름이 다가오며 그늘 방석을 깔자,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엎드려서 돌멩이로 박자를 맞추며 유행가를 불렀다. 영식이를 따라 부르는 것이지만, 재호는 자신이 없어 콧노래로 나지막하게 따라서 흥얼거리기만 했다.
“해방된 역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
누구를 싣고 가는 서울 거리냐...“
움츠려졌던 성기가 돌에 달궈지면, 다시 꼬무락거리며 고개를 드는 것이 영식이 말 마따나 영락없이 자라였다.
영식이는 자꾸만 성기를 주물럭거리며 흔들곤 했다. 그럴수록 비온 뒤의 송이버섯 모양을 하며 조금씩 자라는 것 같았다. 가렵거나 따가워서 만지나보다고 생각했는데
“야, 용두질 안할래?”
하면서 종배를 쳐다보았다.
“에이, 아그들 앞에서......”
“아그들도 갈쳐야지야. 그래야 저 풋꼬치들도 익지”
이 괴괴망측한 수음 행위에, 재호는 자기가 큰 죄나 지은 듯이 얼굴이 상기되고 숨이 가빠졌다. 다른 아이들도 호기심 찬 눈으로 흘끔 흘끔 보면서 얼굴이 달아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느그들 꼬치도 익으믄 요런 게 나오는 거여. 몰랐지야?”
“............”
영식이는 사정한 정액을 묻혀서 아이들 코 끝에 잽싸게 묻혔다.
밤꽃 냄새가 났다.
“요것이 나와야 장개도 가고 애기를 배는거여. 이 속에 애기 씨가 들어있거든.”
갑작스런 일에 어찌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코를 풀며 멋적어 하니까
“고눔들 쬐그만한 것들이 대개 좋아하구만이......”
하면서 길남이의 볼기짝을 냅다 쳤다. 재호는 영식이와 종배의 말을 처음에는 농담으로만 알아들었다. 그러나 영식의 얼굴 표정은 갈수록 진지했고, 이야기는 더 깊어졌다. 그는 형님 병원에 있는 의서에서 보고 읽은 것이라면서, 남녀 생식기의 구조와 성행위, 임신과 출산, 몽설에 관해서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다리 밑에서 줏어왔다는 거 거짓말 아니지야? ”
“다리 밑이 아니라 다리 사이네?”
종배가 간간이 이야기에 끼어들며 거들었으나, 마른침을 꿀꺽꿀꺽 삼키는 꼴이, 확실하고 자세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이야기 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간 채, 발갛게 물든 얼굴로 송두리째 넋을 빼앗기고 있는 게 역력했다. 부모나 선생님, 그 아무 누구에게서도 배워본 일이 없이, 그저 아기는 엄마의 배꼽을 째고 나올 것이다 하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재호는, 이런 사실들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저것 봐! 저 눔들도 붙었지야?”
때 마침 짝짓기를 한 왕잠자리 한 쌍이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날아갔다.
“느그들, 개 도야지 흘레한 것도 못 봤냐? 닭우 새끼 뼉하는 것도...... ”
“사람이야 멀 그런다냐?”
“허허, 똥구녁으로 호박씨 까지 말어. 느그들도 그렇그름 생겨난거여...”
“그믄 말여, 애기 못난 사람은 왜 그려?”
재호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기 부모님과 만리성 아주머니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묻지도 못한 채 늘 혼자서만 품어왔던 궁금증이 아닌가?
“씨가 나쁘거나 텃밭이 나쁘거나 하것지야. 우리 병원에 오믄 검사해줘.”
“............”
재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의 성기를 흘끔 바라보았다. 번데기마냥 오므라 붙었던 성기가 어느 사이엔지 자라 모가지처럼 곤두 서 있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지않아 영식이의 것처럼 변해갈 자기의 시커먼 성기를 상상하니, 야릇한 기운이 사타구니를 감돌며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털끝만큼도 내색하지 않은 어른들은 의뭉스런 것일까? 점잖은 것인가? 이런 것을 언제 어떻게 배우는 것인가? 안 배워도 알게 되는 것인가?
아뭏든지 영식이의 그 밑바닥이 보이지 않은 깊은 지식과, 그 끝도 갓도 없는 많은 정보와, 그 뛰어난 말재간......재호에게 영식이는 백과사전이요 만물박사요 참으로 우상이었다. 그가 말한 것이라면 모두 진실하고 확실한 것으로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재호의 머릿속에 깊이 못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