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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새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10월 10일. 만리성 앞에는 청천백일기가 꽂혀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 날을 쌍십절이라는 국경일로 지키고 있었다. 하루 이틀 기다려봤으나, 까치 한 마리 와서 울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제호네는 형빈이 어머니께 이야기하고는 길을 떠났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오시지 않은 것은 빨치산들에게 붙잡혀 죽었거나, 어딘가에 숨어서 아직도 수복된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잔뜩 찌푸린 날씨는 곧 비라도 올 것 같았다. 탐진강을 끼고 걷는 이 길은, 석달 전에 아버지와 함께 외갓집으로 피신 가던 그 길이다. 강물은 한가롭게 졸졸거리며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흐르고 있었다.

“ 까욱 까욱! ”

난데없이 까마귀 소리가 들려 왔다. 까치가 와서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고,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고 했지 않은가? 한 마리 두 마리가 보이더니 어느새 한 무리가 떼를 지어 나타나서 바람을 일으켰다. 까마귀는 보기에도 시꺼멓게 밉상인데다가, 썩은 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더구나 사람이 죽으면 송장 썩는 냄새를 멀리서도 곧잘 맡고 날아온다는 새! 그래서 사람들은 송장 뜯어먹고 사는 저승새라고 했을 것이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고 흰 눈이 수북히 쌓이는 겨울이 되어야 제 철을 만나는 법인데, 왜 철 이르게 나타나서 언턱거리 하는 것인지 여간 기분 나쁘지 않았다.

“ 까악 까악!”

“ 저눔의 까마구 새끼들, 왜 지랄덜이여? 재수 없게...”

어머니의 안색이 변했다. 재호도 까마귀들이 아버지의 혼을 빼앗아 가지나 않을까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은근히 불안해졌다.

“ 까욱 까욱!”

까마귀들은 하늘 위에서 빙빙 돌며 씽씽 바람을 일으켰다. 재호는 돌멩이를 주워서 힘껏 던졌으나 어림없었다.

군동면 지서.

재호가 첫 붉은기를 보았던 곳이 아닌가? 지서를 끼고 석교 다리 쪽으로 돌아섰는데, 요령 소리와 함께 장례 행렬이 나타났다. 구슬픈 향두가 소리도 상여꾼들의 만가도 없이, 달구지에 실려나간 초라한 관 뒤에는 한 여인의 가냘픈 호곡만이 허공에 흩날렸다. 누가 왜 죽었건 죽음은 슬픈 일이다. 까닭도 없이 재호의 마음도 얼굴도 덩달아 무겁게 흐려졌다.

“ 워매!”

갑자기 어머니가 무릎을 치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재호도 덩달아 주춤거리며 놀라와 했다. 가슴을 치며 따라가는 사람은 바로 훈이 어머니가 아닌가? 믿어지지 않은 이 광경을 지켜본 어머니는 따라가는 사람을 붙들고 이 사연을 물었다.

훈이 어머니는 털보 아저씨와 살림을 차렸는데, 6.25가 나자 털보 아저씨는 그만 미쳐버렸다. 벌거벗고 초가 지붕 위에 올라가 박 덩이를 따서 내던지지를 않나, 비오는 날이면 대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춤을 추지나 않나... 그러나 이 거짓 미치광이 행세가 들통이 나고, 월남해서 서북청년단을 했던 과거가 드러나자 인민재판에 붙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훈이 어머니도 양키놈하고 살았던 양갈보라고 조롱을 받아온 데다가, 이제는 반동분자의 아내로 몰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다. 털보 아저씨는 인민재판에서 대창에 찔려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음독을 했다. 시름시름 앓다가 수복되자마자 숨이 끊어져, 지금 북망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훈은 보이지 않았다. 재호를 형처럼 따르던 불쌍한 훈!

“ 쯔쯔쯔쯔. 시상에 저런 드런놈의 팔자가 또 으디있을까 잉.”

어머니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훈이 아버지가 전사해 돌아 왔던 그 통곡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 호곡을 해야 하는 훈이 어머니의 비통함을 누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으랴 . 재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 야, 얼렁 가자.”

어머니는 재호의 팔을 끌었다. 섣불리 위로한답시고 아는 채 하는 것은, 오히려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 까악 까악”

까마귀는 새 중에서도 지능이 가장 뛰어난 새라고 한다. 그러나 까마귀 열두 소리에 하나도 좋지 않다고 했듯이, 하필 까마귀로 태어나서 사람들로부터 욕가마리가 되었을까? 털보 아저씨의 혼령이까마귀 소리가 되어, 이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을 부르며 허공을 헤매는 것 같았다.

재호네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까마귀 소리가 들릴 때마다 훈이네가 생각나서 어머니는 연상 혀를 찼다.

‘저 까마귀 소리가 털보 아저씨의 죽음을 액땜한 것이라면, 설마 아버지야 별 일 없겠지.....’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풀벌레소리가 요란했다. 산등성이의 도토리 나무가 갈색 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보라색 용담이 드문드문 얼굴을 내밀고, 한 곳에는 들국화가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빨간 구슬처럼 졸랑졸랑 달린 찔레 열매 사이 사이로 산새들이 옮겨 다니며 즐겁게 지저귀었다.

어머니는 아직 털어놓지 못한 기막힌 이야기를 하였다. 한창 위험했을 때, 어느 먼 친척집에 들어가 웃목에 놓여있는 진동항아리 뒤에 붙어 앉아 숨어 있었다. 수색을 하는 빨치산들이 들이닥쳐 꼼짝없이 들키게 되었노라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그 집 며느리가 출산을 하게 되어, 시어머니는 삼신상제께 삼신풀이를 하고 산모는 진통으로 고래고래 악을 쓰는 바람에 , 빨치산들이 방에 들어오려다 말고 그만 되돌아가서 목숨을 건졌노라고 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밀짚모자를 눌러 쓴 허수아비 같은 사람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지척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숨을 몰아 쉬며,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는 걸로 보아서 몹시 힘든 병자 같았다. 비켜갈 때만 해도 서로 본척만척 했는데, 그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 여보시오. 거 재호 어무니 아니요? ”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미쳐 듣지 못했는데

“ 혹시 너 재호 아니냐?”

는 쉰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귀에 익은 듯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다본 어머니는

“ 재호 아부지 맞소? ”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듯이 물었다.

“ 나, 재호 아부지여.....”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꼬꾸라지듯 주저앉았다. 눌러 쓴 밀집 모자를 벗어든 그 사람은 틀림없는 아버지였다. 밀랍 같이 희디흰 해골이 두루미 같은 목위에, 덩그렇게 붙어 있다고 해야 옳았다. 바지 가랑이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두 다리는, 가죽과 뼈가 찰싹 달라붙어 젓가락 그대로였다.

“ 아버지!”

재호는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마치 체온도 없는 장작개비처럼 빳빳했다.

“ 재호야.....”

아버지는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눈물도 메마른 것 같았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눈이 초점을 잃고 있는 게, 곧 숨이나 끊어지지나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 여보시오. 정신 채리시오. 여그서 죽을라요 잉?”

“ 이제 죽어도 한이 없어....”

꺼져갈 듯한 말을 간신히 남기고 한숨울 길게 몰아쉬더니, 길가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현훈증이 도진 탓일까? 아버지는 징용 갔다 온 후로, 가끔 이렇게 어지러워 하였지만 이날은 심상치 않았다.

“ 재호야, 물좀 떠와! 물 좀...”

마침 들국화가 피어있는 골짜기로, 가는 물줄기가 바특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옹달샘이라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새가 없었다. 재호는 어머니가 벗어준 고무신을 들고 골짜기 물을 두 손으로 떠서 담아 왔다.

“ 호랭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채리믄 산다고 안했소? 정신 채려서 물 마시시오”

어머니는 고무신짝 물을 입 속으로 흘려 넣었다. 재호는 계속 물을 담아 왔으며, 아버지의 얼굴에도 물을 끼얹으며 뺨을 주물렀다.

“ 휴우”

아버지는 정신이 돌아온 듯, 한숨을 길게 쉬면서

“ 내가 왜 이런디야?”

하면서 일어나 앉았다.

“ 여그서 객사할라고 왔소? 죽드라도 집에 가서나 죽어야재...”

“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우리 안 죽고 살았잖아요?”

“ 오냐, 아부지 복 없어서 니들이 고생이지야...”

“ 아버지, 저한테 업히세요”

“ 갠찮아, 니가 못 업어.”

“ 업을 수 있어요. 어서 업혀요”

“ 아서. 내가 걸어볼게”

아버지는 어머니와 재호의 곁부축을 받고 용쓰며 일어났다. 아기들 걸음마 배우 듯 발을 떼었다. 칠량서 여기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이렇게 걸어왔다는데, 이런 걸음이라면 온종일 걸어도 집에 갈 것 같지를 않았다.

“ 당신 같이 복 없는 사람은 이 시상 천지에 둘도 없을 것이요.”

어머니는 일그러진 얼굴로 계속해서 혀를 찼다. 배부르고 등 따 스면 되지, 그 놈의 청년 운동인지 건국 운동인지 한다며, 공산당 때려잡던 업보일 거라고 아버지께 핀잔을 주었다.

“ 그리어. 사상이란 것....지내 놓고 보니께 다 그림잔디....”

아버지도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기만 하면 다시는 그런 짓 안 하겠다고 했다.

“ ‘초년 고생은 은을 주고 산다’ 했지만, 재호 니 나이엔 너무 큰 고상이었지야. 아부지 잘 못 만나서...”

“ 아버지, 괜찮아요. 아버지만 건강하세요.”

먹구름이 가랑비를 흩날렸다. 가을비는 장인의 나룻 밑에서도 피한다고 했지만, 나뭇잎을 도롱이처럼 엮어서 우비를 만들어 썼으나 옷이 눅눅해졌다. 소달구지 하나라도 지나가면 오죽 좋으랴. 오늘 따라 사람 그림자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버지는 쉰 목소리로 그 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바람에 분주소에 가서 자수를 하였는데, 목숨만 붙어있을 정도로 몽둥이를 맞았다. 피멍이 새파랗게 된 채 외숙의 바지게에 실려 외갓집으로 와서, 똥물을 마시고 똥을 바르며 치료를 했다. 가까스로 걸을 수 있을 때, 통행증을 끊어 광주로 올라가서 숨어 살겠노라며 속이고는, 한밤중에 수동리 당숙댁으로 되돌아갔다. 쥐도 새도 모르게 대청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고 독을 묻어, 그 속에 숨어서 목숨을 부지했노라고 했다. 주먹밥을 얻어먹으며 굶지는 안 했는데, 햇빛을 못보고 운동을 못하다 보니까 산송장이 되더라고 했다. 재호를 한 번만 만나면 한이 없겠다며 기를 쓰며 살아왔노라고 했다. 그 한을 풀었으니 이제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겠노라고 했다.

석교 다리를 돌아섰을 때는 땅거미가 내리고, 다행히 비는 그쳤다. 털보 아저씨의 죽음을 하늘도 슬퍼했을 것이다. 까마귀들도 어디론지 가버렸다.

“ 털보가 죽었다요. 아까침에 이 다리를 건너 관이 나갔어라우.”

“ 그래? 거 아까운 사람 갔구만. 선산에도 못 묻히고.....”

아버지는 혀를 찼다. 털보 아저씨와 청년 운동을 같이 했던 게 아닌가? 장래가 촉망되었던 청년이었는데.

" 글씨, 훈이네 하고 살다가 죽었다요. 미친 시늉한 것이 들통 나서 인민재판에 끌려갔다가....“

아버지의 눈언저리가 가볍개 떨렸다. 한 식구 같이 살았던 훈이.

엄마의 기구한 운명을 또 무어라고 해야 할것인가? 재호네나 형빈네나 걸어온 인생길이 한결 같이 파란만장한 가시밭길이었지만, 훈이 엄마의 숙명은 다른 사람과는 견줄 바가 아니었다.

군동면에서는 다행히 굴레미를 한 말달구지를 만나, 덜그덕 덜그덕 장흥으로 갔다. 별도 없는 껌껌한 밤. 그러나 이 밤이 지나면 저 먹구름이 걷힌 푸른 하늘에 밝은 해가 두둥실 떠오를 것이다는 생각이, 재호의 마음속에 가득 차 오르고 있음을 뿌듯하게 느꼈다.

“ 아버지, 전 비서새랑 기러기 이야기를 잊질 않았어요.”

재호는 뼈만 남은 아버지의 손목을 더듬어 붙잡고, 헤어지기 전의 일, 그리고 종이 학을 접던 어린 시절로 날개를 폈다.

“ 그래, 장하다. 꿈 많은 소년 시절에, 꿈도 꿔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옷자락은 비에 눅눅히 젖어 있고, 그 목소리는 눈물에 촉촉이 젖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재호는 푸른 하늘 높이 꿈의 날개를 펴 보기는커녕, 새장 속에서나마 날갯죽지 한 번 마음껏 펴 보지 못한 채 숨가쁘게 자랐다. 찌그러지고 오그라져 오는 좁은 새장 속에서 후루룩거리다가, 지난날 영식이의 말대로 어느새 고추가 익고 성대가 굵어졌다. 비록 아버지 어머니가 종이새 일지라도 질긴 사랑의 끈을 더욱 탄탄하게 멜 것임을 다짐하면서, 재호는 아버지의 여윈 손을 더욱 힘주어 붙잡았다.



1) 삼신상제(三神上帝)...해산 일을 맡은 여신

2) 삼신풀이...삼신상제께 순산을 빔

3) 분주소...인공 때 지방에 있었던 경찰 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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