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어머니와 재호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는 기어코 동백마을로 향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보릿고개에 막 올라섰다. 개들도 다 죽었는지, 괴괴함이 두껍게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추수가 이미 끝난 들녘도 황량한데, 솔바람에 실려오곤 했던 그 향긋한 솔냄새도 나지 않았다. 발갛게 익은 감들이 아니었다면 죽음의 마을 그대로였다. 잠시 숨을 고르며 땀을 훔치고 있는데, 난데없이 재호가 나타났다. 지름길로 앞질러 달려온 재호가 장맞이한 것이다.
“ 아버지, 총 쏘면 안돼요! 사람 죽이면 안돼요!”
재호는 아버지의 기관단총 총대를 붙잡았다. 목소리도 눈알도 젖어 있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아버지에게
“ 사람 죽이면 죄 돼요. 살인범 아들 안 되고싶단 말이예요!”
“ 안 쥑일거여...”
“ 그럼 왜 총은 가져와요? 안 죽일라면 총 이리 내놔요!”
재호는 맬방을 잡아당겼다.
“ 사람을 쥑였으믄 저도 죽어야재.”
“ 그래도 아버질 살려줬잖아요? 아버진 살았는데 왜 죽여요?”
“....................”
“ 아버진 청년운동 정치운동 다신 안 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 알았어. 이걸 놔!”
목소리로 보아 아버지의 마음은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아버지
는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쌓이고 쌓였던 모든 울분이, 내뿜는 저 연기와 함께 사라지면 오죽 좋으랴’
재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 아부지도 사람 쥑일 생각은 안했지야. 엄포나 놀라고 했재.”
“ 엄포도 하지 말라니까요 네? 아버지.”
재호는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이 마을에는 윤씨와 송씨들이 웃녘 아랫녘에 살고 있었는데, 조상들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내외사촌 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이 두 성씨는, 그야말로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앙숙관계가 되어 있었다.
윤씨네 가문 몇몇 사람이 빨치산이 되어 입산하는 바람에, 윤씨 가문은 한데 몰아 모두 좌익 가문으로 낙인 찍혔고, 경찰은 경쟁 관계인 송씨 가문을 협조자로 끌어들여 우익 대접을 했던 것이다. 6.25가 터지고 인공 시대가 되자, 빨치산들이 하산하여 경찰의 앞잡이였던 반동분자 송씨 가문의 씨를 말리는 보복의 창을 휘둘렀다. 심지어 윤씨 아이들이 송씨 아이들을 냇가로 끌어내어 인민재판을 하여 돌팔매질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백일 천하가 막을 내리고, 인공 시대의 ‘부역행위자’를 처벌하게 되자, 이번에는 윤씨들에 대한 송씨들의 잔악한 행패가 시작되었다. 난데없이 기관단총을 메고 나타난 사위를 붙들고, 재호 외할머니는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었다.
“ 초서방, 참게. 참을 인자 셋이믄 살인도 피한다네.”
“ 예, 알았습니다. 안 쥑일랍니다.”
“ 원수지고 살믄 자손 대대로 피를 보는 법이여. 재호를 봐서라도.”
“ 예, 염려하지 마시라니까요.”
“ 한 시를 참으믄 백 날이 편한 법이니께...”
외숙도 외할머니를 거들었다.
남자 어른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은 윤씨네는, 새파랗게 질려있고, 송씨네의 눈에서는 복수의 불꽃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민’자도, 공산주의의 ‘공’자도 분간하지 못하고, 좌익과 우익조차 혼동하면서 살아온 이 마을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복수의 악순환이 벌어진 것이다.
자수하면 아무렇지 않다고 했던 윤씨 패거리들에게 몽둥이 타작을 당하였다가,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 채 폐인이 되다시피 살아남은 아버지였지만,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이 비극 앞에 아연실색하고는 하늘을 쳐다보다 고개를 떨구었다. 반만년 동안 한 핏줄로 태어나서, 흰 옷을 즐겨 입으며 ‘정’으로 순박하게 살아왔다는 배달민족이, 이렇게 원수 되어 이를 갈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 내가 니놈들하고 같을 순 없다. 그냥 간다....”
이 말 한 마디 뱉아 놓고 아버지는 바쁜 듯이 곧 발걸음을 돌려도다녀갔다. 용서는 가장 좋은 복수라고 했지 않았던가? 속담에 오랜 원수를 갚으려다 새 원수가 생긴다고 했지 않았던가?
“ 아버지, 수동리 안 가실라요? 당숙네요...”
“ 글씨 바쁜디......”
“ 바빠도 그 일이 먼저라야 잖아요? 아버지 가요. 잠깐이라도,예?”
“ 그려. 니 말이 옳다.”
재호의 발걸음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자기의 판단이 올바르고, 자기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그토록 가슴 뿌듯할 수 없었다. 재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고 할까?.
반딧불을 보고 놀래었던 그 논둑 길. 미끄러지며 건넜던 그 징검다리. 그 때 그 발자국 위로 또 하나의 발자국이 포개지는 이 순간의 감격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 감격도 잠깐일 뿐, 당숙네 대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뜨겁게 달아오른 납덩이가 가슴 깊이 틀어박힘을 느꼈다. 실어증에 걸린 병자 같이 입술만을 들먹거리고, 수전증에 걸린 환자 같이 그저 옷소매를 붙든 채 흐느끼는 당숙모를 어떻게 위로할 수가 없었다. 역시 말을 잃은 당숙은 재호의 손을 붙잡고, 아직도 대청 마루 밑에 묻혀있는 독을 가리켰다.
‘ 아, 저게 아버지의 방이었구나!’ 독 뚜껑을 천장 삼고, 거적대기를 벽으로 두른 저 독방에서, 눕지도 못한 채 어떻게 석달을 버티었을까?’
재호의 온몸에 전류가 강하게 흐르는 듯 했다.
“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수복이 되어 재호의 아버지는 살아났지만, 인민군에게 의용군으로 끌려간 큰아드님의 소식은 영영 끊어졌고, 다시 살아온다는 소망은 이제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조카를 살린 기쁨과 아들을 잃은 슬픔이 교차하는 이 감정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꼭 살아서 돌아올티니...”
“ 하늘도 무심허지.......”
“ 수일 내에 다시 찾아뵈리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어, 이 말만을 남기고 되돌아서 나왔다. 소리개를 쳐다보며 가슴 조리던 그 산 속, 간담을 서늘케 했던 그 망두석 그리고 주먹밥을 던져 넣었던 그 바위 밑 동굴...참으로 둘러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좀더 한가한 다음 날을 기약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총을 맨 아버지를 보더니 지나가던 트럭이 저절로 섰다. 총대를 맨 사람이면 아무나 무서워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씽씽 달려 돌아오는 길은 잠깐이었다. 세 식구가 살아서 다시 만났던 그 자리엔, 마른 풀잎들이 서로 엉켜 누워 있고, 고무신으로 물을 떠오던 그 골짜기는 이제 물이 말라붙어 가랑잎들만 쌓여있었다.
그 동안 가슴을 죄며 불안에 떨고 있던 어머니는
“ 당신, 참말로 사람 쥑이고 왔소?”
하며 아버지의 눈동자를 뚫어져라고 바라보았다.
“ 싹 쥑이고 왔재....”
“ 워메메. 내가 못 살어. 당신 제 정신이 아니재, 사람을 쥑이다니...”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 사람 쥑이면 저도 죽어야재...”
“ 그래도 당신은 안돼! 요렇그롬 살려줬지 않았소?”
“ 안 죽였어요. 그냥 왔어요.”
“ 니가 으츠구 아냔 말이여?”
“ 따라갔다가 왔어요.”
재호는 아버지를 앞질러 뛰어가, 길목에서 장맞이 했던 일로부터 시작해서, 하루 동안의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담배만 피우며 듣고 있던 아버지가
“ 재호가 인저 아이가 아녀. 슬거워졌어.”
하며 재호를 칭찬했다.
“ 시상에, 니 아부지 귓구녕이 을마나 작은디 니 말을 듣다니...”
“ 아버진 다신 정치도 안 하실 거예요.”
“..................”
“ 참말이지라우? 하느님께 맹서하지라우?”
“ 그리어.”
“ 아버지, 제발 청년운동 하지 말아요! 싫단 말이예요!”
“...............”
그러나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 옛 동지들은 아버지를 가만 두지 않았다. 생명을 걸고 투쟁해왔는데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수복은 되었어도 입산했던 빨치산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지서를 습격하고, 민가를 약탈해 갔다. 여.순 사건 당시의 상황보다 훨씬 심각했다. 산간 마을들과 절들은 빨치산들의 아지트로 쓰였으며, 울창한 숲들은 은신처가 되어, 버스 트럭들을 습격하곤 했다.
경찰은 청년단과 학생들의 지원을 얻어 공비 토벌 작전을 펼쳤는데, 도로변 나무들은 모조리 베거나 불태우고, 아지트로 쓰이는 산간 마을들도 불사르거나 소개시켰다. 보급로를 끊어버리고, 지원 세력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틈바구니에서 빼앗은 곡식, 깨, 마늘, 고추 심지어 무명 삼베 옷감들까지 끌고 와서 토벌대들이 나누어 가졌는데, 청년단원들은 재호네에게도 상납용 선물로 가져왔다. 마치 전쟁터에서의 전리품이나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였으나 그것이 약탈품이지 어찌 전리품이란 말인가?
밤에는 공비들이 내려와서 빼앗아 가고, 낮에는 토벌대들이 올라가서 뜯어오고... 곡식 한 톨을 금싸라기 같이, 무명 한 조각도 비단 필처럼 여기는 가난한 두메 산골 농민들의 땀과 눈물의 결정체요 재산이 아닌가? 당장 먹고 살 것이 없는 재호네에게는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으나, 벼룩이 간을 내먹는 것만 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재호는 사약이라도 든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수복된 기쁨과 웃음이 사라졌다. 하루하루가 그토록 지겹고 고달플 수 없었다.
“ 굶으믄 죽지야, 사흘 굶어 울타리 안 넘은 놈 없는 법이여...”
“.................”
“ 우리가 안 갖고와도, 산손님들이 다 갖고가부려. ”
어머니는 재호를 달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이라 했으니까.
1) 부역행위자(附逆行爲者)...6.25때 공산 치하에서 살인 고문 방화 약탈 등을 했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