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비좁은 단칸 방안에 두 집 식구들이 한데 모였으나, 웃음은 없고 무거운 침묵과 긴장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온 식구들이 해바라기처럼 아버지의 얼굴만을 쳐다보면서, 기대 반 실망 반의 표정이었다. 사선을 넘어 살아 돌아온 반공 투사요 대서소까지 했던 전력이라면, 법도 꽤 알고 경찰서도 활개치며 드나들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기관단총 메고 다니던 때만 잠깐, 총을 반납한 후에는 아무런 힘을 쓸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 오빤 대붕이 아부지가 징역살이 하거나말거나 관심이 없소? 대붕이 아부지 같으믄 맨발로 뛸 것이요.”
고모는 봉숭아 씨앗 터지듯 울음을 터뜨리고, 대붕이 낙붕이도 따라 흐느끼며 원망스럽게 외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대붕이 너 합장 기도해야 돼!”
“ .............”
재호는 철이 없는 것 같은 대붕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몹시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난 어려운 있을 때마다 기도했단 말이야. ”
“ 누구한테? ”
“ 천지신명께 하거나 하느님, 부처님......아무나 해봐!”
“................”
정말 재호는 수많은 기도를 하며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 때 그 때마다 기도의 대상이 바뀌어 과연 누가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모르지만, 반드시 기도를 해야한다고 막연히 믿고 있었다. 고모도 그
옛날 어머니만큼 정성껏 치성을 드렸으면 오죽 좋으랴. 그런데 고모 역시 그런 낌새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아 재호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 재호 살릴라고, 온 식구들이 을매나 마음 고생했는지 모를 것이요.”
“ 쬐금만 더 참어! 차라리 유치장에 들어있는 게 더 낫단 말이여. 나돌아 다녀봐. 어느 놈한테 맞아죽을지 몰라......”
“ 경찰서에서 못 빼냈는디, 검찰청에 넘어온 사람 으츠구 빼낸다요?”
“ 글씨, 더 지달려 보란 말이여.”
아닌게아니라 아버지가 강진 경찰서에 몇 번 찾아갔으나, 끝끝내 장흥 검찰청 지청으로 넘어오고 말았다. 사건이 크고 죄가 무거울수록, 경찰의 손에서 검사의 손으로 넘어온다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자위대장을 했다면, 자수를 하나마나 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오랜 가믐에 고추잎 오무라들 듯 고모의 입술은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 누가 하고잪아서 했간디. 안하믄 쥑이니께 했재. 억지로 감투만 뒤집어썼지 사람을 쥑였나 불을 질렀나? 조카 숨겨놓고 고생했는디, 상은 못 줄망정 자수했으믄 놓아줘야지 가두긴 왜 가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할아버지의 한숨은 끊일 새가 없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광대뼈가 더욱 튀어나오면서 수척해진 할아버지는, 철이 바뀌면서 흐린 눈에 눈곱이 자주 끼고, 흥분해서 말할 때에는 실룩거리는 입 언저리에서 흘러내린 침이 눈에 띄게 누런 수염에 방울방울 맺혔다. 하늘이 좁다 하고 맘껏 날아다니다시피 했던 대붕이 형제도, 이름에 걸맞지 않게 비에 젖어 떨고있는 참새 마냥, 이제는 날개를 접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만 보고있는 모습이 여간 애처롭지 않았다.
“ 아버지, 고숙이 절 숨겨준 증거를 대면 안 될까요? 고모 집 담벼락에 제가 쓴 시랑 만화랑 숨겨뒀거든요. 반공 시, 반공 만화거든요.”
답답하다 못한 재호가 이런 의견을 내자, 처음엔 아버지도 영문을 몰라 시큰둥한 표정으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하룻밤을 지나더니 그게 무엇인지 찾아와 보라고 했다. 재호는 대붕이와 함께 단숨에 뛰어서 고모 댁으로 갔다. 여기 저기 흙담들만이 타버린 집터들을 지켜주고 있었고, 흙담 둘레에 삐죽 삐죽 자라난 개망초흰 꽃들이 지난 백일 동안의 비극을 가려주려 애쓰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눈여겨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피해 다녔는데, 지금 와 다시 보니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처참한 폐허 그대로였다.
대문 안에 들어서려니까 어디서 찬바람이 이는지 몸이 으스스했다. 숨어있는 빨치산이라도 어디서 나타날 것 같아 아랫도리가 떨렸다. 누군가가 지금 엿보고 있지나 않을까, 누군가가 이미 없애버리지나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담쟁이덩굴을 헤치고 기왓장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 대붕이는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는 듯이 마른침을 삼키며 동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재호는 자기도 모르게 환호를 하면서 두 손을 치켜올렸다. 명함 상자 안에도 다 차지 않을 분량의 종이 조각! 그나마 누르스름하게 바래버린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다. 돋보기를 대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작은 이런 글씨를 어떻게 썼을까? 콩알만해진 간담으로 쓰면 깨알 만하게 쓸 수 있을까? 그러나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는 그렇게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대붕이는 시에는 관심이 없고, 만화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둘기 나라와 붉은 수리 나라가 각각 남한과 북한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성(流星)
북쪽에서 불어오는 붉은 바람.
미친 회오리 바람.
별 하나 꼬리를 끌며 떨어지네.
낙엽처럼 떨어지네.
냇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가는데
유성은 흐르다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저 바람이 자면 돌아오려나.
타버린 재라도 돌아오려나.
내 소원 꼬리에 메달고
흘러가라 길게 흘러가라.
혼자서 타지만 말고
붉은 바람 살라버려라.
이 날 밤 재호네 집에서는 시 낭송회가 열린 셈이었다. 아니 반공 궐기대회가 열린 셈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딱딱한 낱말들이 엉성하게 늘어선 글에 지나지 않았으나, 차돌처럼 굳은 반공 의지만은 어둠 속에서 맞부딪치면 부싯돌 같이 불빛이 번쩍거릴 것 같았다.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그 무시무시한 틈바구니에서, 배짱 좋게 어떻게 그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어떻게 그토록 감쪽같이 숨겨둘 수 있었느냐고 들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라서 그랬지, 다시는 미련하게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는 담당 검사에게 올릴 탄원서를 쓴다고 했다. 이 국난을 당해서, 부역행위를 한 공산주의자에게 엄벌을 주어야 마땅하다는
말로 서두를 꺼낸 후, 그러나 공산당들의 압제와 공포 분위기 속에서 하는 수 없이 협력했으나, 반공 애국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던 사람들은 가려내어, 다시 대한민국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달
라는 말을 썼다. 재호네 가족과 친척들 모두가 반공 애국자들로서, 공산 정치 밑에서 간신히 생명만을 건졌고, 특히 재호의 고모부는 처조카를 숨겨둔 채 온갖 고생을 다 했으며, 수복을 믿고 기다리면서 조카의 반공 시, 반공 만화를 안전하게 감추어 주었다고 했다. 그 증거품을 함께 제출하니 참고로 하여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면,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하도록 잘 지도하겠노라고 하였다. 그리고 민주공화국인 우리 대한민국은 법대로 옥과 돌을 잘 가려내고,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어리석은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그 며칠 후, 고모부는 정말로 풀려 나왔다. 하늘이 도운 것인지, 아버지의 탄원서가 효력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나왔다는 것이다. 법원에 고소할 것을 미룰테니, 앞으로 조심하라는 처분이라고 했다. 혐의가 없으면 불기소 처분을 하는 것인데, 의심은 있지만 고소를 미룬다니 뭔가 아쉽고 꺼림직 했으나, 아무튼 자유의 몸이 되어서 모두들 안도의 숨을 쉬었다. 더구나 재호의 시와 만화가 큰 몫을 했을 것이라니, 재호에게도 드디어 날개가 돋아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대붕처럼 하늘을 맘껏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가 아니라, 하나밖에 없어 한 쌍이 가지런히 맞대야 날아다닐 수 있다는 전설 속의 상상의 새 비익조(比翼鳥)라고 스스로 규정 지었다. 형제가 있는 것도 정다운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닌,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늘 혼자 있게 되는 재호! 태워버릴까 말까 망설임 속에서, 담벼락을 바라볼 때마다 눈치를 보며 가슴 조렸던 지난 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식은땀과 뜨거운 눈물의 결정체인 글자 하나 하나가 구슬이 되어, 꿰면 귀한 보배가 아니겠느냐 하면서, 앞으로 시집을 엮어 내야겠다는 말들도 했다.
그러나 고모부의 얼굴 표정은 아직도 무거워 보였다. 아버지께 가시 돋친 말을 불쑥 불쑥 했다.
“ 부역행위자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 아니요? 지나간 과거사를 처벌하기 위해서 새 법을 맨들다니.....”
“ 아무 소릴 허지 마. 때가 어느 때여? 인민재판 안 봤어? 무법 천지 아녔어? ”
“ 법치국가란 말만 안 해도 가만 있지라우. 제 매형, 재판이나 받
아 봤다요? 창고에 가둬놓고 불질러 쥑인 놈들 멀쩡하게 시방 살아있어라우.”
“ 질서가 잡히기 전 아니었는가? 밤엔 인민공화국, 낮엔 대한민국
....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혼란 아니었는가? 억울한 사람들 누명 벗을 때가 올 것이네.”
“ 흥, 민중의 지팡이? 그게 민중의 몽둥이지......”
“...................”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며 냉소하는 고모부의 입술이 가냘프게 떨렸다. 경찰의 조사를 받을 때 당했던 모욕과 폭행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고모는 시퍼렇게 멍이 든 고모부의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눈물을 떨구었다.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찡그린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대붕이 형제도 덩달아 얼굴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담배만 피워 물었다. 석방을 감사하면서 기뻐하기는커녕, 불만을 늘어놓는 고모부가 재호는 몹시 못 마땅했다.
“ 시국이 비상 시국 아닌가? 자네, 반민특위 해산시키고 친일파들 처벌 안 한다고 불만 안 했는가? 과거사 처벌 할라고 새 법 맨드는 거 잘 한 일은 못 되재. 비상 시국엔 비상 법이 맨들어지재....”
그래도 고모부는 아버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해방 후 그 사상 논쟁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 고모부는 진짜 공산주의자인가? 그렇다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재호의 머리 속은 또다시 얼기설기 복잡해졌다.
“ 아무튼 입 조심하게. 말 한마디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시상 아닌가? 죽은 목숨 같이 가만히 있는 게 장땡이여. 기소유예 처분 왜 했겄는가? 근신하라는 거여. 입 틀어막고 있으라는 거니께........”
입씨름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언제 또 불붙을지 모를 일이었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으면서, 고모부는 법률 지식이 부쩍
늘었다. 어머니는 고모부가 변호사가 다 되었다고 뼈 있는 말을 한 마디 하였다. 서당개도 십 년이면 풍월을 한다고, 재호 역시 많은 법률 상식을 얻게 되었다.
옛일을 거슬러 올라가 처벌하기 위해서 새 법을 만들 수 없다는 것, 헌법과 형법이 각각 어떤 법이고, 경찰과 검찰이 어떻게 다르며, 검사와 판사가 무슨 일을 하며, 고소와 재판이 어떻게 다르고,
검사의 불기소 처분과 판사의 무죄 판결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 등...
고모랑 대붕이 형제는 그 날로 집에 돌아갔지만 할아버지와 고모
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언제 누구에게 해를 받을지 세상이 아직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재호의 고모부는 이렇게 석방이 되었지만, 대붕이의 고모부는 검정 숯 덩이로 변한 채, 영혼만 울부짖으며 허공을 떠돌아다닐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