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담

by 최연수

이 해가 저물어갈 무렵 뜻밖에 나의 혼담이 설왕설래 하였다. 서울에서 깊게 사귀고 있는 여자가 아직 없다면, 부모가 중매한 S에게 장가를 들라는 것이다. S는 누님의 친구이고, 아버지 친구의 처제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께서 장수하지 못할 것이므로 맏이는 일찍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6.25 때 공산당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후유증 때문에, 흐리거나 비가 오면 온 삭신이 쑤시고 아프다고 호소해 왔다. 그리고 S 집에서는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적극 후원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좁은 고을에서 나는 장래가 촉망 되는 청년으로 알려져, 딸을 둔 부모들은 은근히 사위 감으로 탐을 내고 있었고, 약혼만이라도 했으면 하고 선망하던 처녀들도 더러 있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한 마디로 사양하는 답신을 보냈다. 스무 세 살 나이에 아직 이르며, 고시에 합격하기 전에는 결혼을 안 하겠다는 이유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30세가 지날 것이라는 예언을 남긴 채, 내 뜻을 헤아린 부모님은 더 이상의 권면을 안 하셨다. 그런데 겨울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갔더니, 가라앉았던 혼담이 다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가정 형편으로 보나, 내 사정으로 보아 좋은 혼처가 있을 때 결혼을 하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간곡한 권고와, 처녀 측의 적극적인 청혼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우리 집에 오신 친척 어르신께서

“물론 늬 장래와 일생에 관한 문제니께 늬 의사도 중요하지만, 늬 가정 환경과 부모님 심정도 이해해야 된다. 마침 좋은 혼처가 있다니 기회를 잃지 말고 혼인을 해라. 공부에 방해된다고 하겠지만, 그것도 늬 의지에 달렸지, 넌 능히 감당하리라 믿는다. 돈이 없다 할지 모르지만, 1,2년 내에 큰 부자 될 같지 않고, 구태여 돈 벌고 권력을 얻으면 상대를 고를 필요가 없는 게 아니냐? 마음을 돌이켜 장가를 들어라” 고 말씀을 하셨다.

’58년 1월 5일은 음력 11월 16일 나의 22회 생일이었다. 영하 17,8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 함박눈이 계속 내렸다. 몇몇 어르신네들에게 인사를 다녔는데, 모두 내 결혼 이야기였다. 결혼하기 위해서 귀향한 걸로 추측한 분들도 있었다. 그 동안 소문이 떠돈 것 같았다. 참으로 난처했다. 그런데 양가에서는 이미 사주(四柱)를 보았다는 것이다. 공교롭게 S와 생년월일이 똑같고, 다만 시간만 약간 내가 일러 오빠라는 것이다. 사주에 따르면 동갑끼리는 궁합이 맞아 아주 잘 산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길흉을 점칠 수 없으나, 보기 드문 우연의 사례인 것 같았다.

갈등이 많았다. 그러면 약혼만 해놓고 고시가 끝나고 가을에나 성혼하면 어떻겠느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당사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시기가 적당치 않다는 이유였다. 아버님과 누님은 특사가 되어 처녀 쪽을 방문했다. 그러나 처녀 쪽 홀어머니의 병환이 짙어 서둘러 다른 사람과 맞선 날짜도 받아 놓았다고 했다. 담판은 끝난 것 같았다. 과거에 연애했던 관계도, 최근에 교제한 것도 아니고, 소년 시절에 누님의 친구이기 때문에 알고 지낸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왜 내가 끌려 다녀야 되느냐는 생각이 미치자, S에게 끝맺음 하는 편지 한 장 띄우고, 곧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방학이라지만 진학 업무가 시작되어 바빴다. 새들도 날개를 치며 맘껏 날 수 없는, 해방 후 처음이라는 폭설과 혹한 속에서, 자취생활과 올빼미 장사에 여념이 없었다. 올빼미 장사란 야간 과외지도를 뜻하는 우리들의 은어였다. 그런데 시간만 나면 추억의 날개는 지난 열흘 동안으로 날아가 솔개처럼, 혼담 위를 뱅뱅 돌았다. S가 정혼했는지도 궁금했다. 뚱딴지 같이 결혼 비용까지 예산 세워 보았다. ‘연애강좌’ 책을 다시 읽어보고, ‘완전한 남성’‘완전한 여성’같은 책도 사서 읽어보았으며, 연애 영화도 보러 다녔다. 여.순반란사건과 6.25와 같은 큰 난리를 겪느라고 지나쳐버린 사춘기를 이제야 겪는 것인지, 정신분석학에서 다루는 libido가 늦잠을 깨고 용암처럼 분화구를 찾아 분출하려는 듯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Herman Hesse ‘청춘은 아름다워라’와 ‘방황(크늘프)’를 다시 읽었다. Goethe, Byron, 하이네의 연애 시를 읽었다. 그리고 손수 지은 가사에 곡을 붙여 오르간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바위의 역사

솟아나 산이 된 2월이던가

꺼져서 바다 된 3월이던가,

땅이 주름 잡히던 그 무렵에

짓눌려 단단히 굳었습니다.

방산충 첫 울음 울고

해면이 태어나던 8월 어느 날,

조그만 숨구멍 한 개가

뚫렸습니다.

한창 흙비 내리치고

바위옷 뒤덮더니,

얼부풀어 금 간 곳에

뿌리털이 돋았습니다.

섣달 그믐날 밤 10시 반

사랑 사랑들이 영글 적에는,

앉은 자리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묵은 해 자락을 걷고

새 해가 동트는 새벽에,

조상도 없는 꽃 한 송이가

간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햇귀에 시름시름

시들더니만,

달빛에 바래지며

이내 졌습니다.

46억년 긴 세월을

주름잡아 1년으로 살아 오면서,

그리움 없이 살자던 것이

아쉬움 없이 살자던 것이....

(1958. 1. )


연애하면 시인이 된다 했던가? 이렇게 시를 여러 편 썼다. 그러나 내가 누구를 연모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첫사랑이랄 것도 없는 것인데.....Dante는 9살 때 베키오 다리에서 한 번 만났던 베아트리체를 평생 연모하였다지만, 잠깐 혼담이 오갔는데 왜 뚜렷하게 떠올리지도 않는 얼굴을 지우지 못하는 것일까? 남쪽으로부터 훈풍에 실려 화신과 함께 그가 약혼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마치 연적이라도 된 듯 상대방이 누군지 궁금했고, 무엇인지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야말로 히말라야의 신비 ‘설인(雪人)’ 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성에 대해서는 둔각삼각형이었던 내가, 예각삼각형이 된 것은 분명해졌다. 내가 혼기에 접어든 청년이라는 자각과, 연애 감정도 성적 욕구도 있는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양춘가절 그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차라리 홀가분했다. 망각곡선이 급전직하(急轉直下)하면서 드디어 한 편의 장편(掌篇)소설에 끼어든 삽화(揷話)에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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