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멧새 1 10화

신의 노예

by 최연수

신은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하는 권리를 주고

그 모습을 감추었다.


신과 인간 사이에

자연이 다리를 놓겠다면

신은 당장 파괴할 것이다.


자기 가슴 속에

신이 은신했는지 모르는데

인간은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권리를 얻었으면서도 인간은

보이지도 않은 신 앞에서

노예 생활을 한다.




종교가 없는 불신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한 때 보천교(普天敎)를 믿었다고 했다. 그러나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사교(邪敎)임을 깨닫고 절연(絶緣)했다는 것이다. 해방 후 친지들의 전도가 있었으나, 야소교(耶蘇敎)에 관해서 이해가 안 된다고 하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직후, 크리스마스 무렵 친구 따라 교회를 기웃거려 본 적은 있었으나, 기독학생회 친구들의 전도를 뿌리쳤다. 교리(敎理)보다는, 교회의 난립(亂立)과 교파의 분열, 교권(敎權) 투쟁과 이단(異端) 시비로 인한 가정의 파경(破鏡) 등에 혐오감(嫌惡感)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이란 과학만능주의인데다가, 청년 시절에는 인본주의(Humanism)와 실용주의(Pragmatism)에 젖어 있었다. 간혹 종교 관계 서적을 곁눈질했으나, 기독교를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만이지, 부활이니 영생이니 하는 내세관에 무관심했으며, 말세(末世)니 종말(終末)이니 하는 위기의식과,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 싫었다. 신은 인간의 관념의 산물(産物)인데, 그의 노예(奴隸)로 스스로 전락(顚落)되어 산다는 것은 측은(惻隱)하고 가소(可笑)로운 일이었다. 윤리니 도덕이니 한 규범에 얽매어 산다는 것도 귀찮은데, 또 그 위에 신(神)이라는 절대자(絶對者)를 모신 채, 감시 받고 통제(統制) 받는 다는 것은 귀찮은 것이다.

인간의 이성(理性)과 지성(知性)을 믿었으며, 나의 의지와 능력 그리고 지혜를 의지했다. 법학을 연구하고 실력을 길러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여, 이 땅에, 현세에 이상향(理想鄕)을 건설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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