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자라고 있다는 걸
내가 믿었기에,
꽃 나무 가꾸듯이
물을 주었노라 날마다.
체온이 너에게 옮겨가서
손끝이 시린들,
널 꼬옥 쥐어주고 싶은 건
네 생명이 귀함일래라.
천 년이 만 년이 지나서야
겨우 한뼘 될지라도,
숨 쉬고 있다는 걸 믿기에
난 버릴 수 없노라 너 수정을.
운명(運命)이라 할지라도 사랑해야만 했다. 그와 대결하겠다는 의지(意志)가 꺾이지 않았다. 직장의 사임(辭任)과 아버님의 별세 그리고 누님의 타계 등....운명의 신(神)은 내 목을 점점 죄어오고 있었다. 백기(白旗)로 투항(投降)하기에는 아직 젊고, 여수․순천 반란사건과 6.25동란 같은 사선(死線)을 뚫고 나온 환란(患亂)과, 고학(苦學)․자취(自炊) 등 고난(苦難)의 역사(歷史)가 있지 않은가? 운명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강한 의지(意志)’ 밖에 없다. 비온 후 땅은 더욱 굳어진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는 수정(水晶)이 자란다고 알았다. 뾰족뾰족 돋아나 있는 모양이, 서로 키를 재며 우쭐거리는 걸로 보였다. 물을 주면 자란다는 말에, 화분에 물을 주듯이 물을 주었다. 잘 자라라고 쌀 뜨물을 주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이른 봄 새 싹처럼 나날이 조금씩 자라는 것 같았다.
무생물인 암석(巖石)이 성장할 리가 없다. 요즘 이것을 믿는 아이들도 없다. 그런데 나는 우매(愚妹)할지라도 애써 믿고자 하는 동심(童心)을 잃지 않으려 한다.
한 때 싱겁게 고시에 낙방(落榜)하면서 ‘자살’ 문제를 생각해봤다. 자살을 미화(美化) 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내가 ‘자유인(自由人)’이라면, 내 생명을 자유로 하는 게 자유인의 권리(權利)가 아니냐는 그럴 듯한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수정(水晶)을 함부로 내팽개치지 못한 것은 그 생명(生命) 때문이 아니었던가?
‘나=의지’이다. 이것을 잃는 것은 곧 자살(自殺)이다! 만년이 흘러도 한 치도 자라지 못할 운명이지만, 자라고 있다는 자신(自信), 자라야 한다는 각성(覺醒)은 생명처럼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