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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리공 Nov 09. 2015

썸머는 나쁜 지지배?

500일의 썸머를 보고(조그마한 스포 있습니다)

이 영화를 3번 봤다. 연애하기 전, 연애할 때, 헤어진 후. 줄거리는 이렇다. 톰과 썸머가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다 썸머의 이별통보로 그들은 헤어진다. 톰은 멘붕에 빠진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정신을 차리던 그에게 썸머가 다시 나타난다. 뭔가 새로이 잘 될 법도 한 분위기다. 하지만 결국 썸머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연애 전에 처음 봤을 때는 썸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화가 났다. 뭐 이런 나쁜 지지배가 다 있나 싶었다. 남자가 먼저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귀지도 않는데 갑자기 그에게 키스를 하질 않나. 근데 또 서로를 애인이라고 하는 종속적인 관계는 싫다고 한다. 결국 헤어지자고도 먼저 말한다. 한참 뒤 다시 만났을 땐 또 사람 헷갈리게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역시 예쁜 여자는 속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연애를 하며 두 번째로 봤을 때는 톰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만나던 애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이 영화였다. 나는 이걸 보면 알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더 잘 보일까 싶어 정말 열심히 봤다. 다시 보니 톰이 쫌생이였다. 그는 썸머가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과 깊은 사이가 되기를 망설일 때 재촉만 했다. 품어주고 기다리는 남자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애인과 헤어지고 세 번째로 봤을 때야 비로소 썸머와 톰 둘 다 눈에 들어왔다. 젊은 남녀가 서로에게 끌려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연인이 그렇듯 그들은 서로 달랐다. 톰은 썸머를 운명이라고 생각했지만 썸머는 그에게 확신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그들은 결국 헤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끌리면서도, 동시에 이 남자와의 깊은 관계를 두려워하는 것은 여자에게 흔한 일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답답해하는 것은 남자에게 흔한 일이다. 서로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썸머가 나쁜 지지배도 아니었고 톰이 쫌생이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안 맞았을 뿐이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나는 그녀가 미웠다. 작은 눈길 하나에도 나는 무진장 애가 탔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나면서는 내가 답답했다. 조금만 더 잘생기거나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썸머처럼 나와 깊은 관계가 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그냥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노력이나 이해가 부족했던 부분도 많다. 그 때 저걸 했다면, 이걸 안했다면. 이런 종류의 후회는 머릿속에서 수시로 차오른다. 하지만 결국 다시 생각해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마음인가.

영화는 다행히도 썸머와의 이별에서 끝나지 않는다. 톰은 다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기회가 왔을 때 용기를 낸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사랑했지만 헤어졌다. 사랑은 한쪽의 노력으로만 완성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또 누군가를 만나고 용기를 낼 것이다. 그리고 가진 모든 애정을 바칠 것이다. 설령 거기 이별이 있을지라도, 엄청 좋아해줘야지. 운명이 뭐 별거 있나.

* 전체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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