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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리공 Nov 17. 2015

내가 낳은 괴물

소문의 무서움이란



나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 하지만 무조건 두 귀를 막고 ‘아몰랑’으로 넘기는 말이 있다.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 해.” 라며 시작하는 이야기다. 이런 것들은 모른대도 일신의 안위에 아무 지장이 없다. 오히려 해가 되기 쉽다. 입이 무한정 간지러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은밀한 이야기는 짜릿한 맛이 있다. 하지만 돌고 도는 이야기가 가진 무서움을 경험한 후로는 생각이 달라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반마다 보통 아이들과는 분위기부터 다른 친구가 하나씩 있다. 그는 새치가 많아 할배라고 불렸다. 항상 맨 뒷자리에 앉아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며 혼잣말을 잘 하는 아이였다. 당시 들고 다니며 영상을 볼 수 있는 PMP가 처음 나왔다. 스마트폰이 넘치는 요즘 PMP는 고대 유물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는 혁명이었다. 할배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이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반 친구들은 한번이라도 만져 보려 줄을 섰다. 나도 그 중 하나였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한참을 신나게 구경하던 중이었다. 아무 폴더나 막 들어가던 중 수상한 ‘새 폴더’가 있었다. 클릭하니 정체불명의 일본어가 제목인 영상이 있었다. 이것은! 혈기왕성한 사춘기 청소년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움켜쥐고 주위를 살핀 후 재생을 눌렀다. 한 남자가 단발머리를 한 사람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연인이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카메라 시점이 바뀌며 단발머리를 한 사람의 얼굴이 나왔다. 으악.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기계를 껐다. 단발머리는 남자였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이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기계를 가리켰다. 그도 영상을 봤다. 우리 둘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라 서로를 한참 바라만 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기계를 돌려주고 자리에 앉았다. 친구와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고 있었다. “그럼 쟤가 게이인 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 지나가던 다른 아이가 갑자기 대화에 난입했다. “뭐. 게이? 누가?” 나는 얼떨결에 할배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게...뭔일이래...

소문은 삽시간에 반에 퍼졌다. 그 중 한 아이가 궁금한 걸 못 참고 쉬는 시간에 당사자에게 “너 게이냐? 반에 소문 다 났던데.”라고 말했다. 할배는 절대 아니라며 자기도 중고로 사서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짓궂은 아이들은 그를 추궁하며 놀려먹었다. 수업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교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조용했다.


그 날의 마지막 보충수업 시간이었다. “OO번. 나와서 이거 풀어봐.” 조용했다. “OO번!” 아이들은 고개를 돌리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OO번이 누구였지?” “할배 아냐?” “어라? 할배 자리에 없어.” 누군가 그의 책상 위 종이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며 친구들 모두 행복하게 살라는 내용이었다. 교실은 혼란에 휩싸였다. 소문의 시작은 나인데. 저렇게까지 아니라고 하는데 괜한 말을 했어. 숨통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혹시 그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진짜 진짜 무서웠다.

저녁 급식 시간이 되었다. 비 오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는데 저 멀리 누군가 서 있었다. 할배였다. 다행히 살아서 돌아온 그는 배가 고팠는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그를 살폈다. 다시 도망칠까봐 두려웠다. 그 날 이후, 절대 다른 이의 사생활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비밀 이야기를 하는 조짐이 보이기만 하면 바로 자리를 피한다. 소문은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입을 거치며 덩치를 키운다. 쉽게 던진 말이 괴물이 되어 목을 졸랐던 그 날의 공포는 아직도 생생하다.      


닥치고 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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