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피하고 공짜를 싫어해도

나의 탈모 이야기

by 치리공

문제. 교회 다니는 젊은 남자가 받은 큰 복은 무엇일까? 은혜, 구원 등이 생각났는가? 그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상관이 없다. 답은 바로 ‘성비’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 청년부는 남녀 성비가 3:7 정도다. 누구나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만나려 한다. 교회의 여성에게는 애통한 소식이고 남성에게는 구원의 소식이다. 이런 불공평한 현실에서 비롯된 은혜로 결혼에 성공한 못난 형을 여럿 보았다. 덕분에 나는 결혼 걱정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결혼때문에 교회다니고 있지는 않습니다......진짜...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전에 없던 걱정이 움트기 시작했다. 바로 탈모 때문이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우리 집 유전자 지도의 한 좌표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미래를 예측할 때, 기대는 허상이고 불안은 실상인 경우가 대다수다. 병원 검사 결과는 현재 탈모가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교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여자였다. 한 여자애가 소개팅을 할 예정인데 난감한 점이 있다고 했다. 다른 여자애가 말했다. “설마... 머리숱?”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모두 침울해했다. 이구동성으로 다른 건 몰라도 머리숱 없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게 마피아 게임의 범인이 된 기분이었다.


삶의 고난은 ‘원망-저항-체념’의 순서로 변했다. 처음엔 창조주를 한없이 원망했다. 하나님. 이럴 거면 적어도 키는 180이상으로 만들어 줘야 하는거 아닙니까. 아니면 대머리임에도 매력이 넘치는 주드 로 같은 얼굴을 주시던지. 설마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하실 겁니까.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대머리는 아돌프 히틀러가 아니라 디트리히 본회퍼였단 말입니다! (본회퍼 - 나치에 반대한 유명 신학자)

sunset-summer-hipster-pipe-large.jpg 나도 이런 올빽머리가 하고싶단 말이다...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다. 정보를 모으려 탈모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다. 카페 이름은 ‘이마반’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이마가 얼굴의 반인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민간요법부터 비싼 모발이식까지 시험 시작 5분 전의 집중력으로 정독했다. 아쉽게도 크게 유용한 정보는 없었다. 민간요법은 불확실했고, 약을 먹어도 사람 따라 효과가 다르며, 모발이식은 지나치게 비쌌다.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 머리 변하기 전에 만났나?” “너거 아빠는 만날 때부터 그랬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신경 쓰는 여자는 처음부터 안 만나야 된다. 때 되믄 좋은 사람 만날 거다. 걱정 마라.” 온화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전해주는 말에 위로를 얻었다.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머리카락이 공수부대원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낙하한 장면을 자주 포착한다. 덕분에 매일 상실을 묵상한다. 청춘이 또 하루 멀어져간다고 노래하던 김광석씨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바람이 분다. 이 기류를 타고 또 한번의 대규모 낙하작전이 펼쳐진 것은 아닐까. 괜히 머리를 한 번 만져본다. 원망, 저항, 체념은 여전히 한 데 뒤엉켜 마음속을 굴러다닌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넘치는 머리숱을 자랑하는 모델 사진 앞에서 한숨을 쉴 때도 있다.


복잡한 마음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나는 상실에 익숙해지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잃다 보니 이전에 못 보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따지고 보면 삶은 가진 것을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오늘 가진 것들의 귀함도 더욱 깊이 느껴진다. 다시 바람이 분다. 그래, 갈 테면 가라. 나는 살아야 겠다.


man-sunglasses-art-graffiti-large.jpg 갈테면 가라. 나는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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