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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리공 Jan 13. 2016

클립보드 없는 인간의 슬픔

그러니 메모를 많이 합시다.


  정신없는 시간인 오전 11시. 회사 페이스북 페이지 일정을 체크했다. 읭? 생뚱맞은 게시물이 오늘 저녁에 포스팅되기로 걸려있다. 이 예약건은 뭐지. 띠리링. 전화벨이 울린다. 문의 전화다.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을 했다. 전화를 끊었다. 옆에 앉은 동기가 일정 관련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같이 일정표를 보며 잠깐 대화를 나누던 중, 메신저 채팅방에 알람이 떴다. 서류 작성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바로 해당 자료를 정리해 보냈다. 그 외 정기적으로 하는 일도 마무리했다. 시간이 금방 지났다. 1시부터는 올해 새로 시행되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관련 스터디를 했다.  여기까지가 오늘 11시부터 2시 반까지 있었던 일이다. 


  저녁이 되었다. 돈까스 김밥 먹어야징~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롭게 회사 문을 나서는데 팀장님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일정에 없는 게 포스팅 되었던데 어떻게 된 거죠?" "예?" 이게 무슨 돈까스 김밥 옆구리부터 튀김옷까지 다 터지는 소린가 싶어 확인해보니... 아. 아침에 보고 생뚱맞다 생각했던 게시물이었다. 일단 글을 바로 내리고 관련 담당자에게 알리며 사고 땜빵을 했다. 

삽질한 걸 확인 후 표정관리중



   컴퓨터에는 클립보드라는 게 있다. 클립보드는 한 위치에서 복사하거나 이동하고 다른 위치에서 사용할 정보의 임시 저장 영역을 말한다. 그러니까 흔히 어떤 데이터를 ctrl + x 로 잘라내기를 했을 때, ctrl + v 로 어딘가에 붙여넣기 전까지 임시로 데이터가 저장되는 영역이 클립보드다. 방금 지웠던 문장을 ctrl + z 로 복구하는 것도 클립보드에 임시 저장이 기능하기 때문이다. 클립보드만 있으면 잠시 데이터를 화면 상에서 지워도 금방 다시 복구할 수 있다. 


  오늘 내 머릿속에도 클립보드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예약건은 뭐지' 라는 의문문이 갑자기 온 전화 때문에 지워지기 전에 ctrl + x 를 해놨다가, 급한 일만 하고 다시 ctrl + v를 눌러 확인을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게다가 ctrl + z 로 하나하나 이전 일을 복구해 확인도 가능할 테고.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내가 저지른 삽질은 나의 뇌에 클립보드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이 나왔다. 일 못하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이젠 뇌에 클립보드가 없어 일 못하겠다니...참...




뇌에 클립보드가 없어 일을 못하겠다고?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누군가는 그런 고민을 왜 하냐고, 까먹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다고 인정하겠다. 그래. 안 까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처럼 잘 까먹는 인간이 분명 제법 있다. 갑자기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하거나, 다른 급한 일이 생기면 앞의 일을 잊기는 한결 쉬워진다. 생각보다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나 혼자 아닌거 맞겠..지?...)


  결국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은 '메모'다. 영화 메멘토에서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기억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문신을 새기는 것처럼 열심히 마구 쓰기. 오늘 할 일은 무엇인지, 갑자기 생긴 변수는 어떤 게 있는지, 문제는 무엇인지 등. 그냥 일단 열심히 기록해야지 싶다. 


하지만 적는 걸 까먹는다면...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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