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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리공 Aug 15. 2017

스타트업 주니어 마케터 21개월간의 기록

아이고 나새끼 수고많았다


와디즈에서 마케터로 지낸 지 21개월이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비즈니스의 마케터로서, 성장하는 스타트업 조직의 마케터로서 많은 일이 있었다. 까먹기 전에 지금이라도 그간 어땠는지 주절주절 적어보았다.  


충실하게 적었습니다...


처음 ~7개월 (20명 ~ 40명 시기)

/ 맡은 일 - 업무보조 및 행정, 기본적인 콘텐츠 만들기


입사 당시 내가 18번째 직원이었다. 마케팅 팀은 팀장님, 인턴 동기 그리고 나까지 3명이었다. 주 업무는 와디즈에서 진행되는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소개 콘텐츠 제작, 광고 메일 제작이었다. 브랜딩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라, 어떻게든 고객을 홈페이지로 유입시키는 게 목표였다.


그 땐 인원이 적어 담당자가 없는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CS와 사내문화,행정 업무였다. CS는 그냥 자기 자리로 전화가 오면 당첨이었다. 주로 운영을 담당하는 팀에서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내 자리에도 전화가 꽤 왔다. 전화기 너머 고객은 어찌나 궁금한 게 많은지, 덕분에 업무 초반에 와디즈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첫 CS 전화를 받던 나으 모스읍



그 외에도 사내문화업무... 라고 하면 될 것 같은 '생일자 챙기기', '단체 게임할 때 점수매기기'  부터 행사 지원 등의 업무를 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들 자기 업무에 다른 일도 병행하던 시절이었다. (이건 지금도...그렇긴...)




8개월 ~ 14개월 (40명 ~ 60명 시기)

/ 맡은 일 - 마케팅 채널 관리, 뉴스레터 관리, PR 보조


CS 담당자, 인사 담당자 등 회사 내 다양한 기능을 맡아줄 분들이 합류하는 시기였다. 덕분에 마케팅 팀은 이제 마케팅만 하는 조직이 되었다. 인원 수가 전에 비해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업무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SBS와 함께하는 <투자자들> 이라는 크라우드펀딩 예능이 시작됐고, 이외에도 큰 단위의 일이 많아졌다. 팀장님은 주로 대외 업무를 했고, 나는 내부 마케팅 관리를 맡았다.


알아야 할 건 많은데 아는 건 없는 시기였다. SNS채널 관리 대행사 미팅은 비즈니스 미팅이 아니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였다. 외부 컨퍼런스 같은 데 가서는 옆 테이블에 앉은 참석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모르는 걸 물어보곤 했다.

  

바짓가랑이 잡힌 분들은 이랬지 않을까


아는 게 생기니 거만해졌다. 지금보면 아무것도 아닌 지식들이지만, 원래 책 많이 읽은 사람보다 딱 한 권 읽은 사람이 가장 거만한 법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후임 두 분, 인턴 세 분까지 총 5명의 사수가 되었다. 너무 빨리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나도 내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매일 1시간씩 남의 고민을 굳이 들춰내고는 훈수를 두었다. 당시로서는 최선이었지만, 그래도 참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했던 것 투성이다. 특히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땐 이랬다. 아 지금도 남들에게는 그럴지도..



15개월 ~ 21개월 (70명↑)

/ 맡은 일 - 마케팅 서비스 기획, CRM



마케팅 팀의 역할이 더욱 많아지며 마케팅'실'이 되었다. 그간 합을 맞추던 팀은 나뉘고, 다양한 환경에서 마케팅을 오랫동안 했던 경력직 분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마음대로 하던 일이 기능에 따라 쪼개졌다. 함께 일하게 된 분들은 각자 맡은 일을 고도화시켰다. 본격적으로 트레킹 툴이 체계화되기도 했다.


비즈니스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니, 시스템 없이도 내가 알아서 처리하던 업무방식에는 한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모든 일에 체계가 필요해졌고, 그에 맞는 역량이 필요해졌다. 체계가 없던 조직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나로서는 변화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 함께하는 분들이 나의 고민에 많이 공감해주었고,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중이다. 예전에는 회사 마케팅의 큰 그림을 고민했지만, 지금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하루 일과를 고민하고 있다. 회사가 커지며 나 개인의 업무 범위는 작아졌지만, 대신 좁아진 만큼 더 꼼꼼하고 깊이를 더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시스템이 갖춰지는 환경에 맞춰 나도 시스템에 잘 녹아드는 게 필요하다. 이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여전히 모르겠군... 큰일이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앞으로 갈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안타깝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이라고 딱히 번뜩이는 인사이트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점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는 건 확실하다. 오히려 다 깨달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야말로 가장 멍청했던 시기였다.


어차피 쉬운 게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참 끈기없는 내가 그동안 버틴 것만 해도 스스로가 기특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뭐...


잘 되겠지.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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