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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리공 Oct 25. 2015

상남자의 길

상남자란 말이 있다. 정확한 어원은 모르지만, 본보기를 뜻하는 像(모양 상)을 앞에 붙인 것 같다. 남자 중의 남자라는 말이다. 헌데 이젠 다른 한자를 써야 하는 시대다. 상차림을 나타내는 床(평상 상)을 사용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고 1인가구도 급속히 늘고 있다. ‘어디 남자가 요리를~’ 이런 소릴 하다가는 평생 혼자 도시락 까먹어야 하는 세상이다. 


컴퓨터나 하고 앉아 있으면 엄마가 라면이라도 끓여주던 시대는 끝났다.


자취인생도 벌써 3년이다. 1년 차에는 매번 사먹었다. 학생식당의 2500원 정식이면 비싸지도 않고 먹을 만 했다. 2년 차가 되며 물리기 시작했다. 그제의 제육볶음과 어제의 두루치기와 오늘의 돈육구이는 정식 메뉴판의 대한이, 민국이, 만세다. 다른 게 없었다. 나머지 반찬도 내내 먹다 보니 마침내 오늘의 반찬을 보며 내일의 반찬을 예언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찾아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배운 진리는 이것이다. 집안 살림에서는 요리 말고 상차림이 필요하다. 요리는 어렵지만 할만하다. 인터넷에 좋은 레시피가 많기 때문이다. 적힌 대로 재료를 사서 조리를 하면 끝이다. 오직 한 가지 음식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건 김밥인가? 안에 뭐가 들어간 거지... 책 보고 요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나 봅니다.


하지만 상차림은 다르다. 이는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 능력을 필요로 한다. 밥, 국물, 반찬을 한꺼번에 해야 한다. 미리 쌀을 불렸다가 밥을 안치고, 국재료를 다듬고 넣어 끓인 뒤, 냉장고 속의 재료로 어제 먹은 것과는 다른 반찬을 만들다가도, 국물 중간점검을 하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 겨우 한 상 차리는데 뭐 이리 말이 많냐고 묻는다면, 내게는 이게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 대답하겠다. 

그래도 3년차인 요즘은 같이 사는 친구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군대에서 온갖 요리를 다 해본 그는 생선 손질도 할 줄 알아서 아구찜도 만든다고 한다. 그런 건 완제품으로 식당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자잘한 식재료 보관법부터 찌개까지 곁눈질로 열심히 연마중이다. 언젠가는 나도 상차려서 남주는 자상한 상남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내래 내일은 요리왕이 되고 말갓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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