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줄거리만 보면 되잖아. 라고 하는 이에게
소설을 소설책으로 본 적은 거의 없다. 수험생 시절에 교과서나 문제집을 통해 소설을 접한 경우가 많았다. 효율적인 공부를 위해 늘 요약본만 읽었다. 열심히 암기한 덕분에 많은 소설의 등장인물, 주요 내용, 복선 등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천천히 모든 내용을 음미하며 읽은 것은 없다. 시험공부 하기도 바쁜 청소년에게 세세한 배경 묘사나 인물의 심리변화를 하나하나 다 맛보는 것은 사치였다.
시간이 지나 대학에 입학했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주위 조언을 듣고 하나씩 집어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로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이고 자신의 경험을 함부로 일반화하는 저자들의 오만함에 금방 질렸다. 그 뒤로 재미있는 에세이나 비문학 서적만 읽었다.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는 공감이 쉬워 술술 읽혔다. 비문학 서적은 어렵지만 다 읽고 나면 똑똑해진 것 같아 조금씩 읽었다.
간간이 문학 작품을 펼쳐 보기도 했지만 전부 추리, 판타지 소설이었다. 군 시절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혈 팬이었던 선임 덕분에 그의 추리소설 시리즈를 제법 많이 읽었다. 이 책들을 읽을 때 나는 항상 같은 반응을 보였다. 등장인물이 나오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초반부는 흥미진진하게 읽고, 세세한 묘사가 이어지는 나머지 부분은 지겨웠지만 범인이 궁금해서 억지로 읽었다. 아예 중간 부분을 생략한 채 범인과 범죄 방법이 밝혀지는 부분만 찾아 읽고 책을 덮은 적도 있었다.
이런 나에게 소설, 특히 고전읽기는 정말 낯설었다. 멋진 주인공과 놀라운 반전이 한 상 가득 차려진 추리소설에 비해 고전 소설은 그저 쥐코밥상만 해 보였다. 그러던 중 접한 책이 ‘별에서 온 아이’였다. 이 책을 읽기 며칠 전 SPA브랜드의 제3세계 노동자 착취 기사를 보았다. 해외 노동 문제점을 자세히 알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원래 알고 있던 내용이기도 했고 각종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사회이기에 이런 보도 하나쯤은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별에서 온 아이에는 ‘어린 왕’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주인공 어린 왕은 아름다운 것들을 모으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관식 전에 보석들을 찾으려 노력하던 왕자는 꿈을 꾼다. 꿈을 통해 그는 이러한 것들이 다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잠에서 깬 왕자는 대관식에서 예전의 초라한 옷을 입은 채 행사에 임한다.
SPA브랜드에서 양질의 싼 옷이 좋아서 필요 이상을 산 나와 왕자가 다를 바 없이 보였다. 소설 속 백성들의 고난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텍스트는 어느새 나의 경험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후 쇼핑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하고 가급적 좀 비싸도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제품을 사려 노력중이다. 이것이 소설이 내 삶에 스며든 첫 경험이다.
그 후로 바로 읽은 것이 ‘그리스인 조르바’와 ‘죄와 벌’이었다. 두 소설 모두 수능 주요 출제 작품이라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외운 것은 경험한 것에 비할 수 없었다. 자유로운 인물이라고 암기했던 조르바가 이렇게 유쾌한 상남자인지, 자수한 살인범이라고 들었던 라스콜리코프가 어떤 고뇌의 과정을 거쳤는지 진작 알았다면. 또한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 속에 빠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간 외운 소설은 많지만 읽은 소설이 별로 없다. 어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과 제3자를 통해 듣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이제부터라도 많은 소설 속 주인공을 대면하려 한다. 교과서나 문제집이 너무나 쉽게 요약해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 함께 경험하고 싶다. 소설은 내게 시공간을 뛰어넘는 경험을 주었다. 경험은 삶을 만든다. 오늘 만난 이 이야기는 내 삶을 어디로 데려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