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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리공 Oct 23. 2015

달리기를 말할 때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

지난 주에는 발목을 다쳐 매일 하던 달리기를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간접체험이라도 할까 싶어서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최근 달리기를 하며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해병대ROTC와 함께 달린 날이었다. 우연히 두 명의 장교후보생과 같은 코스를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 훈련을 하는 이들이니 체력이 좋기는 당연지사. 하지만 오래달리기는 나도 자신이 있다. 이기려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결국 그들보다 최소 1분은 빨리 들어왔다. 뒤늦게 들어오는 그들을 보며 묘한 쾌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누군가를 이기는 일은 짜릿하다. 상대가 강할수록 더. 


자전거를 탈 때도 그랬다. 길에서 또 다른 자전거 운전자를 만나면 왠지 추월하고 싶다.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앞에 가는 자전거를 제치면 기분이 한층 상쾌했다. 그들은 나의 즐거운 라이딩을 위한 제물이 되었다. 가끔 시합을 걸어오는 상대도 있었다. 직접 한판 붙자고 말하지는 않지만, 말없이 나를 제친 뒤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친다. 그때부터는 전쟁이다. 일단 이기겠다는 집념으로 허벅지 터지도록 달리다 엉뚱한 곳에서 힘이 풀린 적도 있었다. 사력을 다해도 못 따라잡는 상대를 만난 날엔 하루 종일 기분이 찝찝하기도 했다.

하루키는 나와 조금 달랐다. 그는 나처럼 성취와 승리의 달리기를 하는 러너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내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라톤 레이스를 할 때,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서 노루처럼 가볍게 뛰며 앞서나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추월당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스트레스도 커진다. 그런데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니. 이 무슨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루저 외톨이란 말인가. 

이어지는 대목이다.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그러나 아마도 그녀들(성취와 승리의 달리기를 하는 주자)은 아직 그런 아픔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것을 지금부터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151P)’ 

나는 아직 어리다. 욕심이 있고 야망이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을 나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타인이 나와 맞지 않으면 고치고 싶고, 안정적 선택으로 불안을 피하려 한다. 계획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모든 게 내 손안에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추월해 달리는 게 싫다. 내 세상이라고 생각한 곳에 나보다 더 나은 인간이 있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게 싫다. 그래서 나는 아직 어리다.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지천에 가득하다. 세상엔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로 가득하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인간은 나 하나뿐이다. 미숙한 나에게 달리기를 하는 하루키는 말한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이기고 삶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게 아니다. 삶의 주권은 하늘 아부지한테 맡기고, 그저 자신의 다리로 저만의 달리기를 완주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풍치는 세상과 경쟁하는 타인이 내 능력 밖임을 인정하고 그저 꾸준히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나 중심적인 인생 달리기를 넘어서는 주법이다. 성숙한 자세로 매일의 보폭에 집중할 때 이제까지와는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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