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 대화는 통하는가, 흘러가는가

제20장 - 대화는 통하는가, 흘러가는가

by 리얼흐름

카페 디알로고스에는

오늘도 평소처럼 음악이 없었다.

진우는 음악을 틀까 말까 고민했지만,

어떨 때는 음악이 카페 안의 토론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냥 꺼두기로 했다.

음악도 대화의 일부이며 고요한 침묵도

대화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손님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짙은 갈색 코트,

눈매는 흡사 논리 구조처럼 정밀했다.

그는 앉자마자 무거운 발음으로 말했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할 수 있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합니다.”


라빈이 테이블을 닦으며 물었다.

“그럼 마음속 감정도 말하지 못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비트겐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존재는 하죠.

하지만 그건 표현 불가능한 실재입니다.

대화는 종종 그 실재를 오해하게 만듭니다.”


곧이어 두 번째 손님 한나 아렌트가 들어왔다.

검정 외투, 단정한 이마, 굳은 입매.

그녀는 늘 마시던 커피를 받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말해야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공적 세계는 사라집니다.

다른 존재와 연결되지 않는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진우가 의아한 듯 물었다.

“하지만 대화는 때로 왜곡되고,

정치화되지 않나요?”


아렌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말은 동시에 책임입니다.

대화는 존재 간의 약속이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행위죠.”


그 순간, 세 번째 손님이 들어섰다.


카페디20비트겐슈타인아렌트손택.png


수전 손택.

돋보이는 이목구비에 어울리는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작고 단단한 수첩에는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녀는 테이블에 서서 말했다.

“문제는 우리가 대화보다

해석을 더 좋아한다는 거예요.

말을 듣는 대신,

의미를 짜 맞추죠.

그래서 대화는 통하기보다 흘러가는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대화는 기호가 아니라 구조입니다.”


아렌트가 마시던 커피를 떼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때론 그 구조 안에서라도

누군가와 연결되는 기적이 일어나요.”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 던 손택은 미소 지었다.

“그 기적은 침묵이

말을 대신하는 순간일지도 모르죠.”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대화는 의미를 주고받는 것이라 믿지만,

실은 오해를 견디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말한다.’


카페 안에는 아무 말 없는

조용한 손님이 하나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혼자 온 손님의 시선은 창가로 향했지만

마치 등으로 카페 안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그의 침묵도 대화였다.

그의 침묵에는 커피의 향도 오늘의 날씨도

오늘 온 손님들의 기분도 오늘 토론의 정답도

모두 담겨 있는 듯이 보였다.

이 순간 가장 적절한 대화는 침묵일지도 모른다.

침묵으로 하루가 지나가도

나는 나의 내면과 충분한 대화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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