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 타인은 지옥인가, 거울인가

제19장 - 타인은 지옥인가, 거울인가

by 리얼흐름


진우는 오늘 아침 유난히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엘리베이터 안의 낯선 얼굴,

지하철에서 부딪친 어깨,

카페 유리창에 비친 자신.

그 모든 순간마다 그는 ‘나’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첫 번째 손님은 장 폴 사르트르.

검은색 셔츠, 오늘도 외투는 벗지 않았다.

그는 말하자마자 결론부터 내렸다.

“타인은 지옥입니다.

그는 나를 대상화하고,

판단하며 고정시킵니다.

나는 그 시선 속에서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죠.”


라빈이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혼자일 수는 없잖아요?”


사르트르는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삶은 모순입니다.

우리는 타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온전히 나일 수는 없습니다.”


곧이어 문을 연 사람은 에마뉘엘 레비나스.

회색 셔츠, 부드러운 얼굴,

눈은 마치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타인을 통해 윤리를 배웁니다.

그의 얼굴은 나에게 명령하지 않지만

책임을 요구합니다.”


진우가 물었다.

“타인의 얼굴이 책임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레비나스는 말했다.

“그 얼굴은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하죠.

‘나를 해치지 말라.’

그 말 없는 외침 속에서

나는 나를 잊고 그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마지막 손님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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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부버.

넓은 어깨에 어울리는 온화한 미소,

하지만 날카로운 지성의 눈빛.

본인을 위해 남겨 놓은

테이블의 마지막 의자에 앉으며

“문제는 우리가 타인을 ‘너’로 보는가,

‘그것’으로 보는가입니다.

‘나-너’의 관계는 만남이고,

‘나-그것’은 소유입니다.”


주문을 받으러 다가간 라빈이 중얼거렸다.

“우린 대부분 ‘그것’으로 관계 맺죠...”


부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진짜 대화는 희귀합니다.

대부분은 교환이고,

거래이자 타협이니까요.”


사르트르가 웃었다.

“그래서 나는 대화보다 독백을 좋아합니다.”


레비나스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타인을 통해 인간다워집니다.

타인은 불편하지만

거기서 윤리가 시작됩니다.”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타인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인간이게 한다.

나는 타인을 통해 나를 잃고,

또 타인을 통해 나를 발견한다.’


밖엔 낯선 사람들이 여전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어쩌면 안도였고 어쩌면 외로움이었다.

진우는 모든 타인에 대하여 아직 정의하지 못했다.

자신조차도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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