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 우정은 조건이 없는가?
오늘따라 카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진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깨끗한 창문을 무의미하게 닦고 있었다.
손가락이 유리 위를 미끄러지는 감각이
누군가의 등을 쓸어내리는 듯했다.
첫 번째 손님은 아리스토텔레스.
짙은 밤색 튜닉, 어딘가 교사 같은 단단한 눈빛.
그는 들어서자마자 말문을 열었다.
“우정은 세 종류입니다.
쾌락을 위한 것, 유익을 위한 것, 그리고 덕을 위한 것.”
라빈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덕을 위한 우정만이 진짜인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쾌락과 유익은 사라지기 쉽지만,
덕은 인격과 인격이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두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미셸 몽테뉴.
산책에서 막 돌아온 듯한 옷차림,
손엔 오래된 책이 들려 있었다.
“나는 친구를 사랑했습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그였기 때문’이죠.”
진우가 조용히 웃었다.
“그건 너무 낭만적인 것 아닌가요?”
“그럴지도요.
하지만 진짜 우정은 이유 없이 시작되어야,
끝나는 이유도 없습니다.
우정은 두 영혼이 하나로 이어진 완전한 결합이니까요”
그때, 마지막 손님이 문을 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
모직 코트, 작은 노트, 무표정한 얼굴.
“우정은 이성의 동반자입니다.
고립된 생각은 종종 왜곡되죠.
친구는 나의 거울이며,
검증 시스템입니다.”
라빈이 물었다.
“그럼 친구란 조언하는 사람인가요,
함께 있는 사람인가요?”
베이컨은 조용히 말했다.
“둘 다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진실한 우정은 말 없는 판단과 같은 거니까요.
즉 우정은 고독한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인간 삶의 조언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덧붙였다.
“우정은 미덕의 연습장입니다.
나의 선함이 그를 통해 시험되죠.”
몽테뉴는 잠시 생각한 후 미소를 띠며
커피를 마신 후 말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유 없는 우정을 믿고 싶습니다.
그건 인간이 신에게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니까요.”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우정은 조건 위에 세워지는 것 같지만,
오래 갈수록 그 조건은 지워지고,
그저 함께 있었던 기억만이 남는다.
우정은 동성도 이성도 동물도 사물도...
어느 곳에 나 있는 사랑의 다른 이면일까?
아니면 조건 없이 곁에 머물며
마음을 나누는 깊은 신뢰일까?'
밖엔 둘이 걷는 그림자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도 서로 이유 없이 함께 걷는 중일지도 몰랐다.
그저 함께 있었던 기억만이
우정의 전제조건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