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 사랑은 선택인가, 사건인가

제16장 - 사랑은 선택인가, 사건인가

by 리얼흐름

카페 디알로고스의 커피 머신은

오늘따라 느리게 작동했다.

증기는 자꾸만 옆으로 새고 있었고,

진우는 몇 번이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사랑에 빠졌을 때도 이랬던 것 같았다.

집중은 흐트러지고,

사고는 흩어지며,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다.


첫 번째 손님은 에리히 프롬.

가지런한 셔츠와 검은 니트,

차분한 말투를 가진 중년의 남자.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라빈이 물었다.

“그럼 사랑은 연습으로 가능하단 말인가요?”


프롬은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 존경, 배려, 지식.

사랑은 의지의 결과물이며,

선택의 반복입니다.”


곧이어 두 번째 손님이 들어섰다.

사르트르.

짙은 코트,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

그는 프롬의 말을 듣자마자 웃었다.


“사랑이 기술이라면,

실패할 수 없겠군요.

하지만 나는 사랑을 할 때마다 실패했어요.

그건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죠.”


진우가 정리하던 물건을 놓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사랑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사르트르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사랑은 타인을 내 세계에 묶으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타인은 나처럼

‘존재하지 않는 자유’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균열을 품고 있죠.”


그 순간, 마지막 손님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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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헝클어진 머리, 과장된 제스처, 그리고 날카로운 언어.

“사랑은 오류입니다!”

그는 앉자마자 외쳤다.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건, 그

세계의 질서가 잠깐 깨졌다는 뜻이에요.

그건 구조의 파열이고,

우연의 폭발이에요!”


라빈이 그의 과장된 제스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폭발을 찾으러 다녀요.”


“그렇죠,” 지젝이 웃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외를 통해 현실을 확인하거든요.

사랑은 ‘이 수많은 사람 중 너’를 택하는

비논리적 선택입니다.”


프롬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말했다.

“그 비논리 속에도 책임이 따릅니다.”


사르트르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결국 그 책임도

서로를 소유하려는 착각일지 몰라요.”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사랑은 선택처럼 다가오지만,

사건처럼 남는다.

그것은 기술일 수도,

폭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 모두 그것에 실패하면서도 다시 시도한다는 것.’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만큼 많은 사랑이 있을 텐데

어느 빗줄기가 내게 닿을지

걱정보다는 묘한 설렘이 있었다.

사랑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빛을 내린다.

입자이자 파동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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