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 존재는 '지금'에만 머무는가?

제14장 - 존재는 '지금'에만 머무는가?

by 리얼흐름

진우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머그컵이 데워지는 속도,

물이 끓는 소리,

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는 간격.

모든 것이 그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지금을 놓치지 마.’


첫 번째 손님은 에크하르트 톨레.

담백한 회색 스웨터,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앉아 창밖을 오래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과거나 미래는 없다.

존재는 오직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라빈이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할까요?”


“그건 자아의 속성이죠.

에고는 늘 지금을 회피하고 싶어 하거든요.

지금만이 진짜인데.”


곧이어 문을 연 이는 하이데거였다.

무채색 외투, 깊은 이마주름, 묵직한 발걸음.

그는 톨레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환상입니다.

존재는 ‘시간’ 속에서만 드러납니다.

지금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가,

순간적으로 붙드는 가느다란 매듭일 뿐이에요.”


진우가 물었다.

“그럼 지금에 머무는 건 무의미한 건가요?”


“아니요.

지금은 방향을 직면하게 합니다.

그게 죽음이든, 책임이든.”


그때, 세 번째 손님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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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싯다르타라 불리던 남자이다.

수행자의 맨발, 단정한 가사.

그는 그저 미소 지으며 앞선 이들의 뒤에 섰다.

“집착은 언제나 시간에 있습니다.

지나간 것, 오지 않은 것, 만들어진 것.

지금에만 머물면 괴로움은 줄어듭니다.”


톨레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에 ‘머무는 법’을 가장 잘 아는 분 같네요.”


부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머무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지요.”


하이데거가 낮게 말했다.

“그래서 존재는 늘 불안하고,

늘 희미하지.”


셋은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같은 곳을 보는지 다른 곳을 보는지 모를 시선만이

카페 안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처만은 밖이 아닌

톨레와 하이데거를 보고 있었다.


진우는 그들에게 다가오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어쩌면 놓치고 싶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네요.”


라빈이 전원을 끈 드립포트를 닫았다.

김이 올라오는 그 찰나가,

모든 답변보다 명확해 보였다.

명확한 것도 연기처럼 사라지는 순간을 보며

영원한 것 찰나의 것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지금은 끝없이 지나가지만,

우리는 그것을 ‘존재’라 부르며 붙잡고 싶어 한다.’


찰나의 순간,

찰나의 존재를 생각하는 순간

인생도 함께 찰나가 되기에 붙잡고 싶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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