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제15장 -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by 리얼흐름

카페 디알로고스는 항상 밤이다.

이른 오후부터 열어도

밤이 되어야 손님들이 오기 때문이다.


진우는 반쯤 남은 크로와상 위에 떨어진

설탕 가루를 손가락으로 쓸어냈다.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작은 동작.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 손님은 데이비드 흄.

얇은 재킷에 유쾌한 표정,

어딘가 늘 의심이 앞서는 눈빛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를 본 적이 없어요.

의식이란 건,

기억과 감각의 흐름일 뿐.

끊임없이 변하는 조각들 사이에

일관된 ‘나’라는 건 없어요.”


라빈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우리는 단지 스쳐 가는 감정들의 기록일까요?”


흄은 미소 지었다.

“그렇지요.

다만, 그것을 연속된 이야기처럼 믿고 있을 뿐.”


두 번째 손님은 시몬 드 보부아르.

짙은 브라운 색 코트, 짧은 머리카락, 또렷한 눈매.

그녀는 커피를 받으며 말했다.

“나는 여성이지만,

단지 성별로 나를 설명하지 않아요.

‘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됩니다.

우리는 누가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되느냐로 만들어지죠.”


진우가 말했다.

“그러면 ‘나’란 사회 속에서 정해지는 건가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죠.

그러나 주체로서의 ‘나’는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선택하고 저항하며 만들어집니다.

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존재예요.”


그때, 마지막 손님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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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위니컷.

차분한 셔츠와 스웨터,

손에는 작은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진짜 자아’를 가집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감추게 만들죠.

그래서 많은 이들은 ‘거짓 자아’로 살아갑니다.”


라빈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진짜 자아는 어디에 있나요?”


위니컷은 조용히 대답했다.

“놀 때, 사랑할 때,

또는 고요할 때.

그때 우리는 잠깐 진짜 자아에 닿습니다.

그건 설명할 수 없지만, 느껴지죠.”


흄이 커피를 굵게 한 모금 마신 후

한 마디 덧붙였다.

“혹은 그 자아도 착각일지도요.”


보부아르는 웃었다.

“하지만 어떤 착각은,

현실보다 더 나를 잘 설명하기도 하죠.”


진우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나라고 말하지만,

그건 내가 나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그건 내가 멈추지 않고 물어보는 바로 이 질문이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데카르트의 말투가 아니

정확히는

데카르트의 묘한 억양이 잠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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