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존재에게
우리에겐 두 개의 눈이 있다.
더도 덜도 말고 두 개인 이유는 두 가지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는 나를 보아야 한다.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모든 것에서 흘러 나는 노래를 보아야 한다.
다른 쪽으로는 너를 보아야 한다.
너의 말,
너의 행동,
너의 모든 것에서 흘러 나는 노래를 보아야 한다.
그렇게 양쪽으로 가름하고 나면 우리는 망설임 속에 길을 정한다.
나를, 그리고 너를 갈음하게 된다.
멋대로 재단하기도, 섣불리 속단하기도 한다.
처음 보았던 나와 너의 온전한 모습은,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이 뭉그러져 비참하다.
나의 고움을, 너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의 최후는,
굴레에 매여 가라앉은 눈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대로의 어여쁨을 녹인 대가로 고통에 신음하는 것이다.
아름이란 나를 말한다 했다.
가장 나다울 때, 비로소 아름답다고 말한다.
내가 나로, 네가 너로 온전할 때.
우리는 마침내 어여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