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자리에서
“세상에, 내가 너한테 도움을 받다니.
지금까지 적립된 실수 누적액 10만 원에서 1,000원 까줄게...”
주사님의 농담은 유쾌했지만 묘하게 오래 남았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선배를 ‘주사님’이라 부른다. 농담을 하신 주사님은 우리 부서에서 가장 오래 일하신 회계 업무의 베테랑이었다. 그날 나는 회식 참석자 명단을 점검하다 과장님 성함의 오타를 발견했고, 혹시 칭찬이라도 들을까 싶어 바로잡아드렸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1,000원 깎아줄게”였다.
그분은 늘 따뜻하고 유쾌한 분이었다. 다만 내가 연차가 없지 않은데도 유난히 자주 실수를 하다 보니, 그분 눈엔 나는 늘 ‘덜렁이’으로 비쳤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낸 지출서류가 여러 번 반려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분은 내게 ‘실수 적립금 10만 원설’을 농담처럼 자주 꺼내곤 했다.
그때는 웃으며 넘겼다. '내가 덜렁이라서 실수가 많으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애써 웃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마음속에 깊이 박혀 돌덩이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왜 늘 도움만 받는 존재일까.’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일에도 실수를 할까.’
더 괴로웠던 건, 그 순간조차 해맑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주사님! 1,000원이나 깎아주시네요....^__^”라며 가면을 쓰고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왜 그때 기분이 상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웃음 뒤에 숨었을까?'
공무원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숫자에 예민하다. 급여, 예산, 보조금 등 돈과 관련된 일이 많기에 단 한 자리의 오타로도 업무가 반려된다. 그런데 나는 뼛속까지 문과라서 숫자에 매우 약했다. 게다가 계산이 느리고 꼼꼼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살얼음판을 걷듯 긴장했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긴장감 때문에 오히려 더 실수를 했다.
그렇게 나는 '실수투성이에 덜렁거리는 미생'이 되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늘 누군가보다 한 발 느리고, 뒤처지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승진을 하고, 누군가는 과장님께 칭찬을 받았지만, 나는 오타를 발견해 주는 상황 하나로도 농담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적립된 건 업무 '실수'가 아니라, '열등감'이었다. 열등감은 큰 실패에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작은 농담 속에서도, 무심한 한마디 속에서도 조용히 쌓였다.
공무원이 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공시생이었을 때도, 공무원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마음속에서 ‘열등감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자리에서 일하며 나는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의 웃음소리 속에서도, 회식자리의 건배사 속에서도 나는 묘하게 외로웠다. 누군가는 그저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그래'라고 말했지만, 나는 안다..
그것은 조용히 침전된 자존감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일리지가 최대치로 쌓인 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