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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P의 플러팅 이야기-(1)

내 세계를 깨뜨려,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마음

by 다섯빛의 온기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진희가 말한다.
“요즘은 뭐든 자신이 없어요...
일도 사랑도 다 떨어지고 실패만 해서 그런가... ”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나는 늘 뒤처지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늘 뒤로 가던 나였지만, 한 번쯤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한 번쯤, 내 세계를 깨뜨려 보고 싶었다.

그 결과 — 인생 첫 **-플러팅-**을 하게 되었다.


첫눈에 반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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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저렇게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그는 조용했지만 단단했고, 자기 일에 몰입하는 모습이 유난히 눈부셨다. 사소한 친절 하나에도 따뜻함이 묻어났다. 그의 사무실에선 늘 은은한 음악이 흘렀고,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의 말투, 표정, 작은 손짓 하나까지도 눈이 갔다. 그와 몇 번 마주치지도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나의 세계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문득 나도 그 온기에 스며들고 싶었다.



공통점을 찾기 위해 그의 주변을 맴돌다, 마침내 작은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그는 어떤 한 분야의 음악을 좋아했고, 나도 마침 그 음악에 관심이 있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 관심이 있는 척했다.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 MSG를 조금 쳤다.

"제가 이 분야의 음악을 배워야 하는데,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혹시 관련 정보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수백 번을 써가며 연습한 말이었다. 입술이 떨리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다행히 그는 웃으며 나에게 그의 번호를 건네며 언제는 편하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날, 내 안에서 작게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알이 깨지는 소리였다.


나는 전형적인 INFP, 극소심형 인간이었다.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걸고 번호를 따다니 —

그건 내 인생의 ‘데미안’이었다. 내향적인 집순이라 남자와 말 한마디 섞기도 어려웠던 내가

그 벽을 넘어섰다는 건, 내 안의 세계를 부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나는 알에서 막 나온 새처럼 떨리면서도 자유로웠다.


많은 INFP들이 공감하겠지만, INFP의 사랑과 연애는 쉽지 않다.

INFP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된다.

그래서 새로운 만남보다는 익숙한 공간, 안전한 관계를 택한다.

특히 혼자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화'보다 '생각'이 먼저고, '감정'보다 '상상'이 먼저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그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행복한 장면을 상상하지만, 표현을 하지 못해 늘 주저하고 고민하게 된다. 플러팅을 하는 것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하여, 먼저 플러팅을 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게 된다.

그렇기에 INFP의 사랑은 언제나 ‘시작보다 마음의 준비’가 더 오래 걸린다.

나는 늘 누군가를 좋아하기 전에 ‘상처받지 않을 방법’을 먼저 고민했다.

그래서 더디고,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예쁘게 옷을 입고 오래 서랍 속에 묻혀 있던 마스카라를 꺼냈다.

그리고 나의 최애 향수를 조심스레 뿌렸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플러팅'이었다.

작은 젤리 하나를 건네거나, 그 사람에게만 살짝 더 입꼬리를 올려 예쁜 미소를 짓는 것,

멀찍이서 조용히 바라보는 것 — 그게 사랑에 빠진 나의 언어였다.


그와의 연락은 짧았지만 그 며칠은 도파민으로 빛났다. 그의 메시지는 섬세했고, 이모티콘 하나에도 배려심이 묻어났다. 그는 내가 관심 있는 음악 분야에 해박했고 그의 조언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쩌다가 생뚱맞은 질문이 나와도 그는

내 질문에 섬세히 답해주었다. 약속한 동영상과 자료를 밤늦게까지 보내주고, 작은 일에도 예의를 지켰다. 그런 성실함이 좋았다.

완벽한 이상형이 나타난 것 같았고, 나는 그에게 그렇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와 나 사이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지던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이제, 말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그에게 다가가 고백할 그 순간을 머릿속에서 수백 번 그리며 타이밍을 엿보았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나의 용기는, 과연 사랑으로 이어졌을까?
아니면... 또다시 뒤처짐으로 돌아갔을까?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
♡[ 연재 관련 ]
당분간은 매일 한 편씩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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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천천히 써 내려갑니다.
> 이후에는 기존처럼 주 2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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