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극의 회색지대 전략 -
(이 글은 '대체역사' 항목에 포함됩니다.)
(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주세요)
진정한 공포는 힘이나 파괴력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대부분이 기억하는 것은 거인의 나라와 소인의 나라일 것이다.
거대한 신체, 불균형한 전투, 육체적 충격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 그것은 명확하고 본능적인 공포였다.
하지만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따로 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도시, 라퓨타.
말이 없고, 서두르지 않고, 공격도 없다. 하늘 위를 묵묵히 부유할 뿐이다.
폭력을 먼저 쓰지 않고,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자 하나로 세상의 시계를 흐트러뜨리고, 존재만으로 세계를 침묵하게 만든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 위에 조용히 머물며, 빛과 질서, 감각의 기준 자체를 흔든다.
그 아래에서는 누가 무엇을 하든, 결국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포는 형체보다, 그림자에서 먼저 자란다'라고.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그림자를 다시 본다. 우화 속 기억이 아니라, 오늘의 전략무기 형태로.
그 이름은 부레베스트닉.
러시아의 핵추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닉(Burevestnik).
공식명칭 9M730.
핵탄두 탑재 가능, 사거리 무제한, 고속비행도 고도비행도 아닌, 지속적으로 저고도에서 부유하는 무기.
많은 이들은 그것을 그저 신형 핵무기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응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전략 실행을 지연시킨다.
방향도 목적도 밝히지 않으며, 침묵으로 예측 자체를 무기화한다.
누구를 향하는지도, 언제 끝날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차갑고 고요하게, 공포의 리듬을 조율하고 있을 뿐이다.
이 무기를 설계한 자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공포란 격렬한 폭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차디차고 무감각하며 잔인하게 계산된 침묵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병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성명도 없으며, 어떤 경고도 내지 않는다.
다만 하늘 어딘가를 부유하며, 잠들지 못하는 도시의 곁을 따라
국경선 너머에서 긴 침묵을 유지할 수 있다.
요격은 방사능. 무시는 자살.
이 병기는 진퇴양난의 선택을 강요한다.
대응하면 피해가 따르고, 외면하면 침묵이 조여 온다.
이것은 궁극의 회색지대 전략이다.
전쟁은 오랫동안 물질의 싸움이었다. 병참, 공업력, 숫자, 계산— 총력전과 냉전.
그리고 AI는 그 흐름에 정점을 찍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침묵하는 그림자를 보며 다시 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부레베스트닉은 도면이나 제원표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 병기가 불러오는 공포는, 그 무엇보다 ‘해석되지 않음’ 자체에서 비롯된다.
부레베스트닉은 상대를 겨누지 않아도 공포를 유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병기는 바닷속에 ‘숨는’ SLBM과는 다르다.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하늘 위에서 ‘보이기만’ 한다.
이 병기는 전략지표가 아니라 질문이다.
나는 지금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저것은 왜 떠 있는가? 나는 지금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군사적 지도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남는다.
그것은 어떤 결심도, 어떤 단호한 선언도 방해한다.
이해할 수 없는 대상 앞에서, 인간은 판단을 멈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전쟁은 다시 정신의 싸움이 된다.
병기 너머에 있는 존재의 의도, 침묵 속에 숨은 말 없는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를 읽어내야만 하는 우리의 의식.
부레베스트닉은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의미 없는 점처럼 보이지만,
그 점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국가의 대응 전체가 바뀐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이 잠시라도 등골에 서늘함을 느꼈다면—
그 병기는 이미, 아무런 연료도 쓰지 않고 당신 마음속에서 비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 병기의 기술적 제원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다만, 이 존재가 실존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다면 다음을 참고해도 좋다.
※ 위 제원은 러시아의 공식 발표, 서방 정보기관 추정치 등을 종합한 내용으로,
정확한 수치는 공개된 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