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귀로>

- 동출입춘(冬出入春) -

by 전략 문학

(이 글은 '대체역사 - 단편소설' 항목에 포함됩니다.)

(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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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겨울 베이징, 리무진 안에서


베이징은 겨울 속에 잠겨 있었다.

살을 에는 바람이 모래처럼 얇은 눈발을 흩날리고, 붉은 성벽은 희뿌연 먼지처럼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리무진은 자금성 외곽을 따라 느릿하게 흘러갔다.

히터의 낮은 숨소리만이 따뜻한 공기를 흔들었다.


장제스는 코트 깃을 여미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풍경은 흐릿하고, 싸늘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그는 낮게 입을 열었다.

"베이징은 참 바뀌었군."


마오쩌둥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많은 것이 변했소."


다시 침묵이 흘렀다. 리무진 안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창밖의 세계는 회색으로 식어가고 있었다.

장제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1장 : 비행기 위의 회상


하얀 활주로. 비행기의 진동. 타이베이의 마지막 겨울.

비행기가 천천히 떠올랐다.


장제스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바다와, 구불구불한 강줄기, 점처럼 박힌 집들.

대만. 그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했던 땅.


그는 생각했다.

'나는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한 조각만큼은 놓지 않았다.'


구름을 밀어내며 비행기는 북쪽으로 향했다.

희미한 하늘 너머, 그는 대륙의 어렴풋한 그림자를 상상했다.


2장 : 붉은 성벽과 회색빛 거리


리무진은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회색빛 거리, 텅 빈 도로, 바람에 떨리는 가로수.

차창 너머로 붉은 담장이 스쳐갔다.


장제스는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자금성이군."


마오쩌둥은 짧게 웃듯 말했다.

"잠시 들렀다 가겠소?"


장제스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볼만한 건 다 봤소."


말은 그쳤다. 리무진은 붉은 벽을 돌아 조용히 중난하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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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 중난하이


붉은 담장의 끝. 무거운 철제 문. 문틈이 소리 없이 열렸다.

리무진은 천천히 중난하이 안으로 들어갔다.


창밖에는 얼어붙은 호수와 바람에 휘날리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스쳐갔다.

차 안의 따뜻함은, 문이 열리자 차가운 겨울 공기에 삼켜졌다.


리무진이 멈췄다.

차 문이 조용히 열리고, 하얀 장갑을 낀 손이 잠시 스쳐갔다.


장제스는 코트 단추를 여미고 천천히 내렸다.

바깥 공기는 차가웠고, 베이징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4장 : 붉은 대지와 푸른 하늘 사이에서


중난하이의 작은 만찬장.

흰 벽. 낮은 조명. 그리고 벽의 양 끝에는 두 개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하나는 붉은 대지 위에 금빛 별들이 수놓여 있었고, 다른 하나는 푸른 하늘 아래 하얀 태양이 떠 있었다.

둘은 나란히 걸려 있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대만식 단촛국과 삼겹살조림, 대륙식 북경오리와 탕면이 함께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조용히 북경오리를 한 점 집어 소스에 살짝 찍은 뒤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짧은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고, 이내 다시 각자 시선을 내렸다.


식사는 짧고 조용했다. 그 누구도 이 무대를 오래 붙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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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 다시 공항으로


공항은 텅 비어 있었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눈발은 이미 그쳐 있었다.

멀리 비행기 한 대가 은빛 몸체를 드러내며 대기하고 있었다.


리무진이 멈췄다. 장제스는 코트를 여미고 차에서 내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만이 휩쓸고 있었다.

비행기 탑승 계단이 길게 드리워 있었다.


장제스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6장 : 마지막 눈맞춤


계단 중간.

장제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멀리, 회색 외투를 입은 마오쩌둥이 서 있었다.

고개를 들고, 장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푸른 하늘 아래서 마주쳤다.

장제스는 입술을 살짝 씰룩였다.


하지만 마오가 짧게 말했다.

"잘 가시오."


장제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오리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 비행기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비행기는 은빛 궤적을 그리며 푸른 하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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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봄의 기척


비행기는 점이 되어 사라졌다.

마오쩌둥은 그 자리에 홀로 서 있었다.


푸른 하늘. 회색빛 활주로.

얼어붙은 끝자락에서, 연둣빛 새싹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약간 들고,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은 대지와 푸른 하늘, 금빛 별과 하얀 태양.

모든 것이 저 너머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오는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많은 것이 변했소."


그는 돌아서, 천천히 중난하이로 걸어갔다.

초봄의 산들바람이 텅 빈 공항 위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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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역사에서의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은

일본 항복 직후, 45년 8월 28일 ~ 10월 10일까지 이어진 충칭 회담이었습니다.


회담은 쌍십협정(雙十協定)으로 일단락 되었지만,

실질적 군사 충돌을 막지는 못했고 곧 국공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초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만주와 화북에서의 대패(3대 회전, 요심-화해-평진 전역),

이후 전세는 역전되어 국부천대로 이어지고 지금의 양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국공내전은 이데올로기의 싸움이나 구체제와 신체제의 격돌이 아니었습니다.

두 지도자는 서로가 '천명'을 받들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중국을 위해 싸웠습니다.


어찌보면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초한지나 삼국지,

혹은 중국 대륙에서의 왕조교체기와 일치하는 면이 많습니다.


이 단편소설은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한 두 지도자가

다시, 단 한 번 만나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서 쓰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천명은 넘어갔으니까요.


하지만 두 거인의 재회는 상당히 흥미있는 상상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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