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은 학생만 당하는 게 아니었다.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며

by 천세곡

서이초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후, 이곳저곳에서 교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슷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다. 몇 년 전에 있었던 미투 운동이 연상된다. 그들의 호소는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교사라는 존재 없이 자라난 사람은 거의 없다.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보장받는 부분이니 학교를 나왔다면 당연히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커왔을 것이다. 때로는 진짜 부모가 할 수 없는 일들까지 해주는 제2의 부모와도 같았던 그들이었다.


물론, 좋은 선생님 못지않게 나쁜 선생님들도 많았다. 특히 기성세대일수록 그런 기억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 체벌이 심했던 시절에 몇몇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잔인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부모에게 촌지를 요구하여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괜히 학생 인권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니다.


너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다 나온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교사들의 인권을 더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교권이 추락했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생들 앞에 당당하게 서 있을 줄만 알았던 선생님들이 말 못 하고 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게 되는 상황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동안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처럼 선생님의 권위가 여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거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교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안정적 이미지에만 사로잡혀 그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사회 전체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지난주 초등교사 노조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교권침해를 당했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의 99%를 넘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교사들이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사라는 위치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왔다는 사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교사들은 교육 일선에 있으면서도 정작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부당한 민원에도 숨죽이고 있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교사들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해 줄 제대로 된 창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위해 귀 기울이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없었다.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교사들이 얼마나 악성 민원에 시달려왔는지를 알린 계기가 되었다. 안타까운 희생이 있고서야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이어지는 데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어야만 듣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교육의 중심에 서 있다고 믿어왔지만, 실상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것과 다름없었던 교사들. 울분을 참으면서도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야만 했던 그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학교 내의 폭력 피해자다. 학교 폭력은 학생만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학폭 문제가 그러하듯, 교사들이 당하고 있는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 역시 특정 사람 혹은 어느 한 집단의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쪽만을 마녀사녕 하듯이 해결하려 든다면 피해자만 달라질 뿐,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립보다는 화해와 소통이다. 교육계와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며 더 나은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태도와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교육의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어느 누구에게든 폭력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진출처: Photo by Barry Zho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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