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내가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by 천세곡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별로 써본 적이 없다. 전혀 안 써본 것은 아니지만, 평생에 써본 일기라고는 죄다 학교 다닐 때 숙제로 했던 것들 뿐이다.


일기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해본 글쓰기였다. 어린 시절 일기를 쓰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왜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억지로 써내는 일기가 좋을 리 없었다. 오히려 일기를 쓰는 것은 나에게 큰 고통이었다. 그중 최고 하이라이트는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였던 그림일기다. 글자 수 채우는 것도 싫은 데 그림까지 그려야 하니 고문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미술 쪽으로 전혀 재능이 없다.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것을 딱 하나만 뽑아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림 그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다. 하기 싫은 글쓰기와 할 줄 모르는 그림 그리기의 시너지는 어마어마했고 10년도 채 살지 않은 인생임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일기는 매일 써야 했다. 방학마다 족히 40개 이상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 며칠은 쓸 만했다. 친구와 뛰어놀았던 이야기, 비가 와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통닭 시켜 먹은 이야기, 친척 집에 다녀온 이야기 등등. 그런데 딱 이 정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게 없었다.


집이 엄청 잘 살아서 방학이라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었으니 쓸 수 있는 소재가 무척 제한적이었다. 며칠 주기로 같은 이야기가 비슷하게 무한 반복되었다. 초등학생의 일상이 뭐 그리 매일 새로울 게 있었겠는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비슷비슷한 날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하고 있는 고민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꼬꼬마였을 때 일기 쓰면서 했던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도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가장 먼저 ‘오늘은 뭘 쓰지?’하는 생각부터 든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일상에서 글감을 찾는 것부터가 일이 된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쓰고 싶어서 쓴다. 그리고 쓰고 싶을 때 쓴다. 오래 고민해도 쓸 내용이 떠오르지 않으면 억지로 쓰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게 될 줄이야 참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기는 하다. 일기조차 쓰기 싫어했었는데 지금은 글을 적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소통까지 하고 있으니 신기한 노릇이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일상에 대한 기억이고 기록이다. 이것도 일기라면 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억지로 쓰는 것도 아니기에 훨씬 마음도 자유롭다. 자기 전 자판을 두드리는 이 시간이, 나의 하루와 마음을 복기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글쓰기는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쓰지 않았다면 파편처럼 흩어져 버렸을 조각들이, 글로 적어내면 자판 위에서 춤추듯 모여들어 한판의 퍼즐로 완성된다. 이 희열을 한 번 맛보고 나니 쓰지 않는 삶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기를 쓰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내가 이렇게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새삼 글이 나를 쓰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씩 더 알아가고 요즘이다.




*출처: Photo by Zoran Borojev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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