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돌이지만, 휴가를 가고 싶어졌다.

by 천세곡

휴가를 아직 다녀오지 못했다.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더 큰 이유는 남은 연차가 몇 개 되지 않아서이다. 보통 회사들이 다 그렇듯 내가 일하는 곳도 개인에게 지급된 연차 휴가 안에서 여름휴가를 가야 한다. 상반기에 개인적인 일들이 좀 많았었다. 어쩔 수 없이 평년보다 더 많은 연차를 소진해 버렸다.


쥐어짜 내면 2~3일 정도 다녀올 수 있겠지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올 해가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급하게 또 써야 할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상 '어떻게든 되겠지'가 잘 안 되는 편이라 대비해 놓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사실, 원래도 휴가를 잘 안 가는 편이기도 했다. 여행도 가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어디 돌아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다 보니 다녀본 경험이 별로 없다. 더구나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말하자면 무척이나 'I'성향이어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에너지를 빼앗기기 때문에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 쉼은 혼자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영화를 보거나 글쓰기를 하거나 음악을 듣고 흥얼거리는 것이 가장 큰 쉼이 된다. 거기에 중간중간 가만히 소파에 기대어 멍까지 때린다면 완벽하다. 굳이 돈 주고 먼 곳을 갈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달랐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더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멈출 줄 모르는 폭염은 마치 지구의 모든 것들을 녹여버릴 기세였다. 매일 피서가 필요했다. 하루의 목표는 오직 시원해지는 것에 있었다. 시원한 장소, 시원한 먹거리가 간절해졌다.


더운 것도 더운데 가장 힘든 것은 높은 습도였다. 습한 공기는 신기할 정도로 사람의 기운을 쏙 빼버렸다. 몸이 어디 아픈 것이 아닌데 아픈 사람 마냥 기운이 나지를 않았다. 의욕도 줄어서 아침에 출근하기가 더 싫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스멀스멀 올라왔다.


높은 온도와 습도에 몸이 시달리다 보니 마음도 덩달아 덥고 습해지는 것 같았다. 작은 일에 불같이 화가 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집에서 아무리 에어컨을 틀고 있어도 마음은 잘 식혀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좋은 곳을 찾아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지금 있는 이곳을 잠시라도 탈출하고 싶은 욕구에 가까웠다. 뭐랄까. 시원하되 여기는 아니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일상의 쉼표라는 것은 어쩌면 머물던 자리를 잠시 떠날 때, 더 선명하게 찍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때로는 여기 말고, 거기여만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공간이 주는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도 하니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머무는 휴가'가 아니라 '떠나는 휴가'인 듯하다.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특별 휴가 말이다. 늦었지만 나도 어디론가 한 번 떠나봐야겠다.


그런데... 연차가 없는데 어떡하지...?




*사진 출처: Photo by JESHOOTS.CO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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