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바빠지려고 쓴다.

by 천세곡

‘3,6,9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퇴사 위기가 3년 주기로 찾아온다는 뜻이다. 우스갯소리 같기도 하지만 의외로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정확한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험상은 그렇다. 나 역시도 퇴사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치솟는 시기가 3년 주기로 찾아오곤 했다. 특히 올해는 9년 차를 보내고 있는데, 그 기세가 장난 없다. 3의 배수가 세 번째가 되니 태풍 같은 퇴사 욕구가 휘몰아치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하는 생각과 밤에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생각 모두 ‘회사 때려칠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과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수미상관이 되어버렸다. 하루를 지배하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나라는 존재를 뒤흔들고 있다.


스스로 진로를 바꾸고 싶은 경우가 아닌 이상, 퇴사 충동이 그냥 생겨나는 일은 없다. 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주어진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아무래도 사람 때문에 관두고 싶어질 때가 가장 많은 것이 사실이다.


3년 차와 6년 차를 잘 넘겼으니 이번에도 조금 더 버티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희망회로를 돌려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의 문제가 잘 해결된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안타깝지만 그 사람이 변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 사람 때문에 힘든 내가 왜 더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다. 억울해도 당분간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버텨야 한다. 결국, 아주 고리타분하고 교과서적인 명제에 기대기로 했다.


바로, 내가 변하는 것이다. 남을 바꿀 없으니 나를 바꿔야 한다. 당분간 글을 더 자주 쓰려고 한다. 그동안 매일 쓰는 것에 부정적인 편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매일 쓰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쓰는 것을 사랑하지만, 매일 쓰지는 않았다. 매일 써야 할 이유와 유익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의지적으로 그래왔다.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억지로 써서 삶의 유일한 낙인 글쓰기마저 의무와 스트레스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 쓰라리고 아파서 차라리 더 바빠지려고 쓴다. 언제까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쓰다 보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힘들면 내일로 미뤄냈던 글쓰기를 오늘, 지금 이 시간으로 힘차게 잡아당길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내일 쓰기’가 아니라 ‘매일 쓰기’다.



*사진 출처: Photo by Kaitlyn Bak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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