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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Aug 24. 2023

진짜 개 잘 생겼다.

feat. 처음 먹어본 흑임자 라떼


작년 늦가을, 제주도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카페인 수혈이 시급했다. 제주 안덕 근처에 머물고 있었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입구부터가 남달랐다. 전혀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교문으로 보이는 곳에 카페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지나쳐 갔을지도 모른다.






  카페 건물까지는 꽤 걸어야 했다. 학교였던 곳답게 운동장을 한참 가로질러 걸어가야 다 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 낀 날씨에 폐교라니 괜히 을씨년스러웠다.

  다행히 카페 안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힙한 카페의 느낌과 동시에 군데군데 교실의 분위기도 자아내고 있었다. 인테리어 할 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카페와 학교의 적절한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어떤 커피를 마실지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물론 고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보통 이런 곳에 오면 무조건 시그니처 메뉴 아니면 한 번도 먹어보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언제 이곳에 또 올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을 먹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고른 것은 흑임자라떼였다. 라떼라고 하지만, 아인슈패너에 더 가까웠다. 커피 위에 올려진 우유 크림은 쫀득하고 달콤했다. 거기에 화룡점정처럼 놓인 흑임자 크림은 풍미를 폭발시켰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카페에서 최고의 발견은 따로 있었다. 똘망똘망한 큰 개 인형이 있었다. 목줄까지 매여 있길래, 

  “와 요즘 개 인형은 목줄까지 있네. 진짜 실감 난다.”라고 감탄하며 다가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조준하는 순간, 개 인형이 움직이더니 벌떡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숫자 욕을 내뱉고 말았다…  


  인형이 아니라 진짜 개였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인형인 줄 착각했던 것이다.


  개는 꼿꼿이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당당하게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지지 않으려 녀석의 눈을 똑바로 보았으나 1초 만에 눈을 깔고 말았다. 그러자 개는 여유롭게 저 멀리 다른 한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녀석은 마치 찍을 테면 찍어보라는 식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짖지도 않더라니. 포즈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간으로서의 예를 갖추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개는 뭔가 달랐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가 어려웠다. 귀엽기도 하면서 늠름함과 여유로움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얼굴에 잘생김이 묻어있었다. 


  흑임자라떼도 훌륭했지만, 사실 이 카페는 개가 다했던 것 같다. 개를 보고 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어쩌면 나는 개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피곤함도 잊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도 개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역시 사람이든 개든 일단 좀 생기고 봐야 하나보다. 참으로 미남 아니 미견이 아닐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가 부러운 순간이었다. 



  진심 개 부럽다. 그리고 진짜 개 잘 생겼다.







*사진 출처: 천세곡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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