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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개 잘 생겼다.

feat. 처음 먹어본 흑임자 라떼

by 천세곡


작년 늦가을, 제주도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카페인 수혈이 시급했다. 제주 안덕 근처에 머물고 있었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입구부터가 남달랐다. 전혀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교문으로 보이는 곳에 카페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지나쳐 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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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건물까지는 꽤 걸어야 했다. 학교였던 곳답게 운동장을 한참 가로질러 걸어가야 다 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 낀 날씨에 폐교라니 괜히 을씨년스러웠다.

다행히 카페 안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힙한 카페의 느낌과 동시에 군데군데 교실의 분위기도 자아내고 있었다. 인테리어 할 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카페와 학교의 적절한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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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커피를 마실지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물론 고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보통 이런 곳에 오면 무조건 시그니처 메뉴 아니면 한 번도 먹어보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언제 이곳에 또 올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을 먹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고른 것은 흑임자라떼였다. 라떼라고 하지만, 아인슈패너에 더 가까웠다. 커피 위에 올려진 우유 크림은 쫀득하고 달콤했다. 거기에 화룡점정처럼 놓인 흑임자 크림은 풍미를 폭발시켰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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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 카페에서 최고의 발견은 따로 있었다. 똘망똘망한 큰 개 인형이 있었다. 목줄까지 매여 있길래,

“와 요즘 개 인형은 목줄까지 있네. 진짜 실감 난다.”라고 감탄하며 다가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조준하는 순간, 개 인형이 움직이더니 벌떡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숫자 욕을 내뱉고 말았다…


인형이 아니라 진짜 개였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인형인 줄 착각했던 것이다.


개는 꼿꼿이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당당하게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지지 않으려 녀석의 눈을 똑바로 보았으나 1초 만에 눈을 깔고 말았다. 그러자 개는 여유롭게 저 멀리 다른 한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녀석은 마치 찍을 테면 찍어보라는 식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짖지도 않더라니. 포즈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간으로서의 예를 갖추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개는 뭔가 달랐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가 어려웠다. 귀엽기도 하면서 늠름함과 여유로움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얼굴에 잘생김이 묻어있었다.


흑임자라떼도 훌륭했지만, 사실 이 카페는 개가 다했던 것 같다. 개를 보고 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어쩌면 나는 개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피곤함도 잊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도 개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역시 사람이든 개든 일단 좀 생기고 봐야 하나보다. 참으로 미남 아니 미견이 아닐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가 부러운 순간이었다.



진심 개 부럽다. 그리고 진짜 개 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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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천세곡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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