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가능성을 보고 결혼했다.

by 천세곡

지인과의 대화에서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듣게 된 말이 있다. 자신은 배우자가 될 사람의 ‘변화의 가능성’을 보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산 상속이나 승진의 가능성도 아니고 ‘변화의 가능성’이라니 인상 깊기도 했지만 의아하기도 했다.


여느 부부들이 그렇듯, 지인 역시 자신과 배우자가 무척이나 다르다고 했다. 서로의 다른 점들은 매력이 되어주었지만, 결혼 후에는 갈등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보여준 ‘변화의 가능성’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지인이 말한 ‘변화의 가능성’이란, 이런 것이었다. 상대가 보인 옳지 못한 행동이나 불편한 태도에 관해 언급했을 때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아무리 좋게 말했다 해도 얼마든지 불쾌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생각처럼 쉬운 부분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적받는 것을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더구나 상대가 배우자나 연인, 가족처럼 매우 가까운 사이이고 그 사람으로 인해 감정이 상했다면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스스로 고치려고 했다가도 누군가가 지적을 하면 기분이 나빠져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언성을 높이거나 크게 화를 낼 수도 있다. 상처를 받거나 자존심이 상하게 되면 더 오기를 부리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고와 조언보다는 인정과 사랑을 더 원한다. 자신의 부족한 점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고 이해받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이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고치려고 든다면 사이는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고집은 더 세지기 마련이다.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다 큰 어른에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훌륭한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


관계란 어느 한쪽의 잘못만으로 깨지는 것이 아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상실해 서로가 서로에게 더 나아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균열되기 시작한다. 소중한 관계들을 지켜내는 비법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지인도 이것을 깨달았기에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아주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관계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 출처: Photo by Dương Hữ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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