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간 여름휴가
올여름도 휴가를 가지 못하고 끝나는 건가 아쉬웠는데 8월 말에 간신히 막차를 탈 수 있었다. 아내와 함께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 일명 ‘호캉스’였다.
나는 집돌이다. 딱히 여행의 재미 같은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내는 집순이는 아니지만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나는 안 다녀봐서 잘 모르고, 아내는 다니고 싶지 않아 한다. 이런 둘이 함께 살다 보니 어디 놀러 가거나 바캉스를 즐긴 것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아쉬운 건 별로 없었다. 놀러 좀 안 다녔다고 해서 크게 불행한 것도 아니고 불편하지도 않으니까. 며칠씩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을 뿐, 우리는 일상에서 나름대로의 쉼을 가지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퇴근 후 함께 동네를 산책하기도 하고 가끔씩은 영화도 한 편 보면서 말이다.
이런 우리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더 정확히는 내 마음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집에 머무르며 쉬는 시간들이 분명 좋았었지만, 한계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직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해 오다 보니 일상을 벗어나지 않고는 도무지 풀기 힘든 스트레스들이 쌓여있었다.
아내도 내 상태를 알아차렸는지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오자고 말을 건네주었다. 여행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아닌데 먼저 말을 꺼내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는 유튜브로 여행 브이로그들을 찾아보았다. 볼수록 빠져들어 순식간에 열 개도 넘는 영상을 봐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내 손가락은 핸드폰 위에서 춤을 추며 각종 여행 사이트들을 뒤지고 있었다.
문제는 당장 급하게 가려니 일정을 길게 잡을 수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는 멀어서 가기 애매했다. 8월 말 여름 성수기 끝물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유명한 곳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인기 있는 여행지를 포기하고, 집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근처 호텔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꽤 괜찮은 시설의 5성급 호텔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호텔 방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였다. 사실 호텔에서 있는 것이나 집에서 쉬는 것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저녁을 먹었고,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았으며, 근처 쇼핑몰에 들러 잠깐 구경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일들이 특별한 순간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깊은 산속도 넓은 바닷가도 아닌데 충분히 마음의 환기가 되고 있었다. 이래서 호캉스를 호강한다고 하나보다. 더 멀리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갔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렇게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집에서 멀리 떠나지 못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여행을 잘 알지 못하는 나와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는 아내가 함께 내디딘 첫 발걸음으로는 충분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조금씩 멀리 가는 연습을 하다 보면, 머나먼 인생의 여정도 조금은 더 수월해질 테니.
*사진 출처: Photo by Mesut Kay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