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던진 말이 상처가 된다. 사실 말만 딱 떼어 놓고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못할 말이 아닌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그 말을 했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말이 상처가 되는 이유는 말 자체보다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 커서 그렇다.
사람은 가까운 사람에게 더 쉽게 상처를 받는다. 말이 주는 상처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커진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에 대한 친밀감이나 신뢰도가 높을수록 받게 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친하지 않은 사람의 말보다 친한 사람의 말이 우리 마음을 더 깨뜨리기 쉽다.
가깝지 않은 사람의 말이 상처가 되려면 그만큼 더 큰 비난의 말이어야만 할 것이다.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그 말을 했다는 것이 문제다.
설령 서로의 관계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단 서운한 마음부터 든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니까 해주는 말일지 몰라도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너니까 더 아프기도 한 것이다.
나의 경우도 그랬던 것 같다. 가까웠던 친구나 직장 동료가 핀잔을 준다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조언이나 충고를 했을 때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객관적으로 그 말의 옳고 그름은 나중 문제였다. 더구나 나름의 반박이나 해명을 했음에도 상대가 계속 의견을 굽히지 않으면 서운함은 상처가 되었다.
아마도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주고받는 언어에는 기대하는 마음들이 담기게 된다. 적어도 이 사람만큼은 언제나 나를 지지해 주고,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은 기대와 바람들 말이다.
기대감은 기대하는 마음이면서, 기대고자 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나에게 한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해해 주고 감싸주기를 바란다. 나를 알만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상처가 되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개인의 성향이냐 상황에 따라 다를 테니 꼭 모든 말이 다 상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까울수록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상처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의 말에 내포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참다 참다 마지막에 가서 외치게 되는 바로 그 말, “어떻게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냐?”의 강조점은 이런 '말'이 아니라, 어떻게 '네'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 말 한마디를 하기 전에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먼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진출처: Photo by Afif Ramdhasum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