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말투에서 답을 찾다.

by 천세곡

요즘 예능이나 유튜브 개그 채널에서 90년대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SNL코리아의 한 코너에서는 아예 이것을 컨셉으로 잡아 인기몰이 중이다. 어찌나 재연을 잘 해내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90년대 말투를 개그의 소재로 삼다니 참신했다. 배우들은 능청스럽게 특징을 잘 잡아내어 개그로 승화시킨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90년대 이후 출생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은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주 어렸을 그 때, 거리를 활보하던 ‘X세대’를 감쪽같이 따라하고 있으니 이러한 설정부터가 웃지 않을 수 없다.


기발한 소재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해져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재미와 추억 모두를 선사한다. 또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기성세대의 풋풋한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촌스러운 말투만 제외하면 자신들과 묘하게 닮아있는 그들의 모습에 놀랄지도 모른다.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배우들이 연기하는 90년대 말투는 당시 사람들과 상당히 흡사하다. 유튜브에 ‘90년대 말투’를 검색하면 그 시절 인터뷰 영상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개그 프로그램이라도 나름의 고증을 거친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90년대 말투가 현재의 말투와 다른 점은 특징적인 운율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말투가 꾸밈없이 간결한 편이라면, 그때의 말투는 둥글둥글하고 약간의 리듬감이 살아있다. 정겨우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말끝에 ‘~든요’를 자주 붙이고 ‘요’를 ‘여’에 가깝게 발음한다.


우리가 90년대 말투를 재연한 프로그램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한 시대의 말투이기 때문이다. 불과 20~30년 차이일 뿐인데 말투가 달라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결국 언어와 말투도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70~8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90년대에 이르러서는 소득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대중문화도 꽃을 피웠다. 그리고 이 때 등장한 X세대야 말로 안정된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분출했던 첫 세대였다. 이들은 현재의 MZ세대 못지않은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말이 지금 우리에게 90년대 말투로 알려진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 말투가 X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시대를 이끌던 주류였음을 감안할 때, X세대에 의해 가장 많이 다듬어지고 사용된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90년대 말투에서 리듬감과 더불어 안정감과 여유, 명랑함이 돋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안타깝게도 90년대의 말투는 2000년대 들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것이 90년대 후반, 우리나라가 맞이했던 비극인 IMF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청년들의 꿈과 여유가 사라져 버린 시대가 되면서 말투도 바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억양은 평이해지고 장단음과 리듬감도 과거에 비해 대부분 사라졌다.


언어는 시대의 반영이면서 산물이다. 매일 주고받는 말과 말투 속에 시대가 녹아있다. 지금의 말투가 예전보다 세련된 느낌이긴 하지만, 여유와 낭만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모두가 입을 모아 살기 어려운 시대라고 말들 한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건, 시대의 말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사진출처: 쿠팡플레이 캡쳐 "선데이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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