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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Sep 13. 2023

오 치킨, 마이 치킨

치킨은 나의 소울 푸드다. 튀겨서 먹는 요리에는 많은 종류가 있으나 내 기준에서 튀긴 음식 중 제일 맛있는 것은 치킨이었다. 지금까지 쭉 그래 왔고 앞으로도 영영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혹자는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하지만, 그건 신발을 안 먹어봐서 하는 소리다. 튀김이 맛있는 이유는 튀기는 요리법만이 아니라 식재료가 맛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멋있는 옷을 입어서 정우성이 멋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우성이라서 멋있는 것과 같은 논리다.    


  닭은 단백질이면서 기름지기도 하기에 튀기는 조리 과정을 통하면 그 풍미를 최상으로 올릴 수 있다. 각 브랜드 별로 나름의 노하우가 담긴 파우더 가루를 묻혀 튀겨내면 고소하고 짭짤한 맛에 눈이 돌아간다. 갓 튀겨낸 치킨 한 입 베어 물고, 시원한 콜라나 맥주 한 잔 들이키면 그 즉시 극락이다.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대학생이었던 나는 형편이 녹록지 않아서 주말에 알바를 했다. 처음으로 일 했던 곳이 바로 치킨집이다. 더 정확히는 오래된 백화점의 식품코너에서 치킨을 튀겨 판매하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치킨을 하루 종일 볼 수 있는데 돈까지 벌 수 있다니. 계속할 수 있게만 해주신다면 사장님께 영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사 먹기만 했던 치킨을 직접 튀기고 있으니 이러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치킨에 살고 죽는 내가 치킨집에서 일하게 되다니 이것이야 말로 운명이 아닌가. 게다가 치킨 조리를 몇 번 해보니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지금처럼 다양한 종류의 치킨이 있을 때도 아니어서 기껏해야 후라이드 아니면 양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치킨을 무척 좋아했지만, 기름 냄새는 갈수록 견디기 힘들었다. 일하면서 치킨을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튀긴 수만큼 먹은 것 마냥 속이 니글거렸다. 입맛도 없고 느끼해서 점심시간이 되면 김치찌개나 라면만 먹었다.    


  여름이 되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날이 더워지니 치킨은 더 잘 팔렸다. 하루 종일 기름 솥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무더위에 팔팔 끓는 기름은 에어컨 바람도 튀겨버렸다. 아무리 세게 냉방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땀과 기름의 환장 나는 콜라보는 급기야 나를 참 지성(피부)인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쯤 되니 온갖 철학적인 질문들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내가 튀기는 것은 닭인가? 닭이 나를 튀기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를 튀기는 것인가? 튀긴 닭이란 정말 존재하는가? 닭은 혹시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    


  알바 주제에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르다니. 한동안 치킨은 소울리스 푸드가 될수 밖에 없었다. 튀김 솥 앞에서 영혼은 사라진 채, 내가 치킨이고 치킨이 곧 나였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오늘밤엔 치킨이나 한 마리 시켜야지.




*사진출처: Photo by Huynh Quye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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