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글쓰기 - 11번째
비 맞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몸이 젖는 것도 싫고 찝찝함은 더 질색이다. 그래서 강박적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우산 없이 비를 맞이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니까.
그럼에도 비 오는 날은 좋아한다. 비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창문을 반쯤 열어 둔다. 밖을 향해 얼굴을 대고 한숨 들이켜면 빗줄기는 향기가 되어 흘러내린다.
내가 느끼는 비의 냄새는 물 비린내와 흙먼지 냄새가 섞인 향에 가깝다. 비가 오는 날만의 향내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냄새가 미친 듯이 좋다. 알듯 말 듯 오묘한 향들이 조화롭게 섞여 후각을 자극한다.
비 냄새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향수들도 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나처럼 비 오는 날의 냄새를 좋아한다는 사실의 방증일 것이다. 호기심에 그런 향수들을 시향해 본 적이 있다. 비 오는 날을 연상하게 만드는 것은 맞지만, 내가 좋아하는 진짜 비 냄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 냄새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도 있었다. 흙이나 바위에 있던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유기물 또는 세균 종류가 내는 향이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공기 중으로 분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비 냄새로 인식한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분만 밝혀 낸 것일 뿐, 모든 것을 명확하게 다 알아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는 향임에도 불구하고 흉내만 낼뿐,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 하는 듯하다. 비가 내리면 쉽게 맡을 수 있음에도 여전히 베일 속에 감춰져 있다.
창문을 열었다. 얼굴을 가만히 창가에 기대 본다. 비와 함께 향기가 내린다. 오늘따라 비의 냄새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한껏 숨을 마시니 마음도 차분해진다.
병에 담을 수 없는 향기라서 기억 속에 저장해 본다. 마음속 깊이 이 향기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 비 맞는 것은 싫지만 비 냄새 맡는 것은 좋다. 지금처럼.
*사진출처: Photo by Suhyeon Cho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