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글쓰기 - 16번째
왠지 모르게 축 처지는 날이 있다. 요즘이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특별히 더 바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땅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차분함 그 이상으로 가라앉아 보였다. 사실 내 기분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요즘 나는 상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올봄부터였으니 벌써 계절이 두 번이나 옷을 갈아입을 만큼 지난한 갈등이다.
이렇게까지 소모적으로 오래 지속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미 상사는 여러 부분에서 고의적으로 나를 배제하는 행동들을 취하고 있는 터라, 좋아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나에게는 업무 시간 내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
‘신경 끄기의 기술’을 탑재해 보면 좀 나을까? 해당 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내용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망설여졌다. 예민한 성격을 극복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을 확실하게 끌 수 있는 스위치를 가질 수 있을지를 말이다.
그럼에도 당장에 뭐라도 끄긴 꺼야 하지 싶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스위치를 내렸다. 힘들게 하는 그 부분만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아직 없어서 머리 전체 스위치를 내릴 방법을 강구했다. 그것은 ‘멍 때리기’였다.
두꺼비집 전원을 내린다는 생각으로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내가 의식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고자 모든 떠오르는 생각들을 의지적으로 차단했다. 이러한 상황을 아예 의식하지 않도록 호흡에 집중했다. 다행스럽게 요가 수련 때 배운 심호흡과 호흡 훈련이 도움이 되고 있었다.
불멍, 물멍, 숲멍 등 많은 종류의 멍이 있지만 당장 집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멍이라도 때리려고 했는데 비가 그쳐서 그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유튜브를 켜서 멍 때리는 영상을 틀었다. 원래 멍 때릴 때 전자기기는 금물인 법! 자연의 것으로 때려야 제대로인데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생각보다 있었다.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멍을 때릴 수 있는 것들을 좀 찾아봐야지. 사람들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먹고살아야 해서 당장 관둘 수는 없으니 이렇게 좀 때려야겠다. 나를 괴롭히는 너 말고, 멍을!
*사진출처: Photo by Norbert Kundrak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