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같은 글

100일의 글쓰기 - 18번째

by 천세곡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들이 있다.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개는 오래도록 사랑 받을 때 그렇게 되는 듯하다. 거의 모든 것이 변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함없이 사랑받는다는 것.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70년 전통의 해장국 집에 다녀왔다. 소위 오래된 가게, 노포였다. 17년도 아니고, 70년 동안 해장국을 끓여서 파는 집이라니.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숫자가 다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다른 메뉴 없이 해장국과 전골만 팔고 있었다. 전골도 같은 해장국을 큰 냄비에 끓여가면서 먹는 것이라 사실상 단일메뉴였다. 선지를 즐겨먹는 편은 아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해장국을 시켰다.


생각보다 짙은 국물색이 인상적이었다. 조심스레 국물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어보니 왜 이 곳이 70년 동안이나 장사를 해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대단한 미식가라서가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한 모금이라도 국물을 입에 대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왜 이 식당에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를 않았었는지를.


진한 집된장 베이스의 육수에는 소뼈와 선지가 가득 들어있다. 잘 삶은 우거지와 콩나물도 잔뜩이다. 깔끔한 된장 맛 뒤에 올라오는 소의 육향이 묵직했다. 해장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다른 테이블에서는 대부분 반주를 곁들이고 있다. 나는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젤리처럼 찰진 선지와 뼈에서 발라낸 소고기를 한 입에 넣었다. 깍두기 베어물고 국물 두어 숟가락 떠 먹으니 영혼까지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재료의 신선함과 주인장만의 비법이 들어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오랜 세월의 맛이 담겨 있다. 끓일수록 맛있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을 것이다.


매일 같은 재료를 같은 방법으로 끓여냈을 테지만, 지금 내가 먹고 있는 해장국이 제일 맛있는 해장국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숱한 세월을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한 가지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다. 아주 작은 차이일지라도 어제보다 오늘이 더 맛있고,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맛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의 글쓰기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오랜 세월 매일 끓고 있는 이 해장국처럼, 내가 하루하루 써가는 글들도 조금씩 맛이 더 진해지길 바란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비슷하게 써내는 듯한 나의 글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깊어졌으면 좋겠다.


해장국 같은 나의 글을 읽는 이들 마다 속이 든든해지길 바라본다. 그들이 변함없이 나의 글을 찾아주었으면 한다. 앞으로 70년을 더 쓸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오랜 시간 계속 글을 써낼 수 있도록. 어제보다 지금의 글이 조금 더 낫고, 내일의 글이 오늘 글보다 깊어지기를. 삶의 향을 진하게 담아내어 오래도록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사진출처: Photo by Steve L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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