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안에서 여름을 기다리며
움직이면, 직원인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일이 된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이요, 쉼이 된다. ’ 누구를 위한 리트릿인가?’ 하는 질문이 계속해서 마음속을 맴돌았지만 리더십이 내린 결정이라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었다.
지난주 일 하는 부서에서 평창으로 1박 2일 직원 리트릿을 다녀왔다. 직원들 고생했다면서 이 일이 계획되었다. 안 가겠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뭐해서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말했지만 굳이 멀리 떠나야 하고 자연을 봐야 한단다. 우리의 쉼이지만 우리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다들 기대가 없어서인지 누구 하나 맛집도, 카페도 알아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말은 바로 하자. 우리가 아닌 관리자 너님을 위한 리트릿이라고 말이다. 날도 무척 더운데 비 소식까지 들려오니 가고 있지만 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근로자의 인생이란 언제나 수동태이다.
세 시간 훌쩍 넘는 시간을 달리고서야 평창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이제 카페 가서 숨 좀 돌리나 했더니 곧장 다시 차에 태워 어디론가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리트릿 첫날인데, 반나절을 차 안에서 보내버렸다.
제법 열심히 달리니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참 오랜만의 여름 바닷가이다. 일 때문에 강원도에 제법 많이 왔다 갔었지만,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온 것이 너무 오랜만이기는 했다. 차에서 내려 바닷바람을 맞으니 숨이 탁 트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굳이 이 먼 곳까지 왜 와야 하며, 괜찮다는데도 무슨 리트릿이냐고 온갖 불평으로 속이 꽉 막혀있던 나였다. 막상 와서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니 답답했던 마음들이 마치 모래사장에 적힌 글씨가 파도에 쓸려가 듯 사라져 간다. 다른 직원들도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웃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이란 참 단순하다.
직원들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주겠다는 관리자의 제안이 불편했던 이유는 비단 이것조차 우리에겐 일이고 멀리 다녀가는 것이 피곤해서 뿐만은 아니었다. 자연 보고 힐링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는 했지만, 기대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일해 왔지만 직원들의 고충을 반영해 준 적이 거의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답정너' 관리자들은 늘 자기 의견만 주장하기에 바빴고, 그 끝은 항상 우리에게 헌신이라는 이름의 '희생 강요'였다.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함은 우리들의 마음을 점점 굳어지게 만들었다. 같은 사무실에 있지만 관리자와 직원들의 관계가 좋을 리 없었다.
리트릿을 추진한 관리자는 다시 한번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이었다. 여름 바닷바람이 그걸 용케 알았는지 마법을 부려 모두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이렇게 바닷바람 한번 쐬었다고 그동안 얼어붙은 마음들이 한 번에 다 녹아내리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는 생겨나고 있었다.
저 바다만큼 넓어질 수는 없을지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들이 우리 안에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 직원이든 관리자든 모습은 달라도 모두 한 때는 뜨거운 열정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에 여름이 다시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