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으로만 끝났어야 했다
아주 어렸을 적, 단칸방에서 셋방살이를 했다. 조그마한 마당을 공유하고, 안채에는 집주인이 한쪽 구석의 단칸방에는 우리 가족이 살았다. 그때 부모님은 주인집을 ‘안집’이라고 부르셨다.
조금 더 자랐을 때, 우리 네 식구는 지어진지 얼마 안 된 빌라로 전세를 얻어 들어가게 되었다. 단칸방에서 방도 하나 더 늘어서 동생과 나는 우리 방이 생겼다고 좋아했었다. 이전 집보다 모든 면에서 더 좋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바로 반지하였다는 것이다. 그때 집주인은 꼭대기인 3층에 살았고, 부모님은 주인집을 ‘윗집’이라고 부르셨다.
반지하는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먼지는 한 가득씩 들어왔다. 내 방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자동차의 타이어 또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릎이 보일 뿐이었다. 동생과 좋아했던 우리 방은 일 년 내내 곰팡이가 피었고 덕분에 우리는 비염을 달고 살았다.
어릴 때여서 그랬는지 반지하에 사는 게 막 이상하지는 않았다. 나와 비슷한 형편의 친구들은 그 당시 대부분 반지하에 살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었다. 물론 가끔 좀 사는 친구네 집에 갈 때면 그 밝고 쾌적함에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부러워하기보다는 마냥 까르르 웃으며 더 신나게 뛰어놀았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살아온 날수의 거의 절반을 반지하에서 산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반지하에서의 삶이 좋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이사를 해도 또 다른 반지하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려면 꽤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나간 내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번에 내린 폭우로 인해 반지하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한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들은 뼈아프게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말았다.
특히나 반지하에서 인명피해가 많았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참담했다. 누군가에게 지하 공간은 주차장이어서 비싼 자동차를 잃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지하 공간이 집이어서 목숨을 잃었다.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주거 환경이 운명을 갈라놓았다.
이 난리가 나고 나서야 우리 주변에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재조명되었다. 아직도 20채 중 1채는 반지하라고 한다. 임대주택을 마련하는 등 대책을 세우겠다고는 하지만, 숫자가 워낙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라 당장 해결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비는 내년에도 또 이렇게 많이 내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비가 많이 오면 ‘물폭탄’이 쏟아진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런데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비는 진짜 ‘폭탄’이 되고 말았다. 재난은 취약계층에게 더 치명적이다. 더구나 인명피해라니 더는 안될 일이다. 재산은 잃더라도 생명을 잃어서는 안 된다.
어린 시절, 주인집과 우리 집은 방의 개수도 평수도 달랐지만, 높이는 같았었다. 주인집이 ‘윗집’이 아닌 ‘안집’이었던 그 시절이 어쩌면 지금보다 더 인간다운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말만 할 뿐, 반지하에 갇혀 사는 많은 이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 관심이 없었다. ‘물폭탄’이 진짜 ‘폭탄’이 되게 만든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