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 위해 잘 쓰는 삶
내가 가진 초심은 한결 같이 금방 꺼지기 일쑤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시작해서 제대로 끝까지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3년 전부터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도통 써보지 않았으니 처음에는 너무 막막하기만 했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기를 반나절이었고 그러다가 어렴풋이 무언가 잡히게 되면 그것을 글로 써내는데 또 반나절이었다. 짧은 글 한편 완성하는데 거의 하루가 걸렸다.
엄청난 글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들인 시간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분량도 A4용지 한 장을 간신히 채울까 말까 한 짧은 글이었다. 그래도 글을 써내면 좋았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묘한 성취감이 오늘 하루를 잘 살았다는 마음까지 들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글을 쓰는구나 싶었다.
글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쓰지는 못했다. 무엇을 끈기 있게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지속할 근력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해야지 하면서도 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낙심할 때가 더 많았다.
글을 완성해 내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서 그런지 쓰려고 마음먹는 것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점점 더 큰 부담으로만 다가왔던 것이다. 부담이 크다 보니 점점 미루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저녁에 써야지, 저녁이 되면 내일 써야지 하면서 오늘의 나보다는 내일의 나, 모레의 나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대는 날이 늘어가다 보니 쓰는 날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아예 쓰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무수히 도전했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글쓰기도 이렇게 꺼져버린 불꽃이 된 것이다.
글을 쓰는데 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물론 많이 써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쓸까?'라는 물음은 그 자체로 꽤나 심오하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나에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묻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이기에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 물음은 마치 한 편의 글이라는 종착지에 도착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하는 큰 산처럼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물론 무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이어서 쓰기는 힘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마냥 가볍지 만은 않은 것이어야 했나 보다.
나의 하루, 나의 삶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 자체가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다. 나에게 있어 삶과 글은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그나마 내가 써왔던 글들의 대부분은 주로 일상을 담고 있었다. 하루하루 나의 마음속 가장 가득했던 무언가를 끄집어낸 흔적들로 가득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직장 일에 치여 그저 흘러가는 대로만 살았었다. 똑같이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 따위는 잃은 지 오래 었다. 그냥 오늘 하루 잘 버티면 되지 하는 마음만 들뿐 하루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었다.
'무엇을 쓸까?'라는 고민만 했던 것은 너무 지쳐서 엉망인 나의 삶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꼭 잘 살아야만 쓸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 살다 보면 더 잘 쓸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쓰기로 했다. 잘 살기 위해서 쓰고 싶다.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만 하지 말고 나의 삶을 써내는 데 집중하려 한다. 내 삶을 있는 그래도 표현해 낼 수만 있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는 좋은 글이 되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계속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여전히 일상은 분주하지만,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는 이 행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바라보기에만 바빴던 시선이 모니터 너머 나의 내면을 향하도록 말이다. 잘 살기 위해 쓰고, 잘 쓰기 위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