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글쓰기 - 21번째
오늘은 정말이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매일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첫 위기가 왔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100일 동안 글쓰기를 해낼 거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었겠는가. 반은 미쳐서 나머지 반은 무언가에 홀려서 큰소리친 것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오늘과 같은 슬럼프는 일주일도 안 돼서 올 줄 알았다. 예상보다 늦게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에게 글쓰기란, 나 자체이다. 내 상태가 그대로 글로써 완성된다. 웃기면 웃긴 글이, 슬프면 슬픈 글이, 마음이 깊어지면 깊은 글이 써진다. 글을 제대로 못쓰는 것에 대한 핑계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외부적인 요인들을 가져다가 그럴만한 이유로 둘러댈 수 있다는 말이다. 회사일과 집안일, 약속이나 경조사 등 갖가지 일들을 가져다 붙이면 쓸 이유만큼이나 못 쓸 이유라는 것도 많아진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안다. 내가 쓰는 글의 변수는 오로지 ‘나’라는 것을. 내가 곧 글이기 때문에 내가 오늘 세상에 존재하는 한 안 쓸지언정, 못 쓸 이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쁘면 바쁨을 쓰면 되고, 아프면 아픔을 쓰면 된다. 막말로 팔다리 멀쩡하다면 못 쓸 이유라는 것은 없다. 그냥 쓰고 싶지 않거나 쓸 용기가 없어서 쓰지 않는 것뿐이다.
오늘은 쓰고 싶지 않으면서 동시에 쓸 용기도 생기지 않는 복합적인 날이었다. 마치 지금 밖에 내리는 가을비처럼, 추적추적 서늘함이 마음에 가득했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내 마음 어느 구석에서도 쓰고자 하는 마음을 찾을 수 없는 날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도 온종일이 걸렸다. 하루 내내 글을 썼다는 뜻이 아니라, 고작 노트북 열고 손을 얹기까지 하루 종일이 걸렸다는 뜻이다.
오늘 내가 쓰는 글은 평상시 내가 써왔던 글과 사뭇 다르다. 한 편의 완성된 글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기록하는 것에 가깝다. 억지로 위트를 넣을 생각도 그럴싸한 메시지를 담을 욕심도 없다. 그냥 단순히 적어내는 것에 가깝다. 죽기보다 싫은데 억지로 쓰고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지금 이 글이 오늘 써야 할 글을 채우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내 마음 곳곳에 나 있는 알 수 없는 미세한 구멍들을 메워주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더 크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100일의 글쓰기를 해가려는 이유는 나에 대해 더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마음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불안한 사람이고, 쓸 수 있는 날만큼이나 쓸 수 없는 날도 많은 사람임을 더 알기 위해서다. 고작 며칠 써내면 글감이 떨어져서 무엇을 써야 하나 초조해하는 것이 나이며, 그동안 그나마 약간 그럴싸하게 써졌던 글은 어쩌면 운에 더 가까웠던 것임을 깨닫기 위함이다.
아무리 형편없는 글이라도 계속 써낼 것이다. 계속 절망하면서 낙심하면서 써내어 그 끝에서 과연 나아짐이란 있는 것인지 경험해 보고 싶다. 그리고 오늘처럼, 쓰기 힘든 날이 오는 날에는 이렇게 어둡지만 솔직한 글을 쓸 것이다. 이게 사실 더 나에 가까운 글일지도 모른다.
100일의 글쓰기가 단지 숫자를 채워내기 위한 도전이 아니기를 바란다. 부끄러운 나를, 못난 나를 만나고 써내는 날들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더 솔직하고, 용기 있게 쓰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싶다. 나처럼 글쓰기가 여전히 어렵고 두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같은 사람도 쓰고 있으니 함께 쓰자고 말하고 싶은 오늘이다.
*사진출처: Photo by allison christin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