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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Oct 08. 2023

올 때, 메로나!

100일의 글쓰기 - 33번째

요즘 1일 1아이스크림 중이다. 매일 저녁을 먹고 나면 냉동실로 향한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 먹는 것이 루틴처럼 되어버렸다. 


  10여 년 전, 위가 안 좋아졌을 때 제일 먼저 끊었던 것은 밀가루와 찬 음식이었다. 위가 다시 회복되면서 밀가루 음식은 조금씩 먹기 시작했지만, 찬 음식 특히 아이스크림은 최근까지도 먹지 않았었다. 그런데 드디어 봉인해제가 된 것이다.


  올여름,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지난 글에서 밝혔다시피 요즘 액체류 목 넘김이 부자연스러워 잘 못 마시다 보니 달고 시원한 음식이 끌렸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완전식품은 단연 아이스크림이었다.


  동네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 어색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던 세월 동안 신제품들이 많이 출시되어 있었다. 한참을 냉동고 앞을 서성이다 집어 든 것은 메로나였다.


  오랜만에 먹는 것이니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먹어본 맛 그리고 너무 양이 많지 않은 것으로 고르다 보니 메로나를 집게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안 먹다가 먹는 아이스크림이니 최대한 배가 놀라지 않도록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다.


  더구나 메로나는 멜론이라는 과일이 너무도 비싸고 귀했던 시절인 1992년 무려 200원의 가격으로 출시되어 대중들에게 쉽게 멜론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인류애적인 제품이 아니던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양이 판매되었다고 하니 10년 만에 다시 먹는 아이스크림으로 이보다 더 제격은 없을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비닐을 뜯고 입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혀끝에서부터 목구멍 안쪽까지 전해지는 서늘함에 머리가 띵하다. 쫀득한 멜론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달콤함이 온 입을 감싸자 전율까지 느껴진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맛본 사람처럼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꺼끌한 나무스틱을 핥고 있었다. 머쓱해져 괜히 입맛을 다셨다.


  아쉽다. 하나 더 사 올 걸 그랬나 보다. 마침 퇴근 중이라고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올 때, 메로나!”





*사진출처: 위키트리 "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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