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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Oct 12. 2023

기승전 바람막이

100일의 글쓰기 - 37번째

이 계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단연코 일등은 옷차림이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지금의 옷이 제일 좋다. 청바지에 얇은 티 하나 입고 위에 바람막이를 걸치고 나선다.


  요즘 같은 날에는 기승전 바람막이다. 위아래 위위 아래 무슨 옷을 입든, 심지어 새 옷을 입었어도 그렇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바람막이를 입는다. 


  딱히 멋을 부릴 줄 모르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극강의 편의성을 포기할 수가 없다. 얇고 가벼워 하루 종일 입고 있어도 편안하다. 활동하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뿐이랴. 갑자기 내리는 가을비에도 끄떡없다. 바람막이에 달린 모자 뒤집어쓰고 조금 뛰면 그만이다. 저렴한 브랜드의 바람막이라 할지라도, 심하게 반복 세탁하지만 않았다면 발수코팅 기능이 있어 빗방울 정도는 훌훌 털어내기만 하면 된다. 


  몰론, 단점도 있다. 나름 기능성 의류에 속하기 때문에 괜찮은 걸 사려면 생각보다 많은 돈을 주어야 한다. 옷감이 얇은 것에 비하면 가성비가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또한, 색상이나 디자인을 잘못 선택해 입을 경우 MZ세대라도 한순간에 AZ(아재) 세대로 돌변할 수가 있다. 바람막이가 편리함에 치중한 옷인 건 맞지만, 패션을 포기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껏 비싼 돈 주고 샀는데 굳이 먼 미래의 내 모습을 연출할 필요는 없다.


  바람은 꼭 실외에서만 부는 것은 아니다. 환절기 가을바람은 잘못 쐬면 몸이 병들지만 실내에서 부는 어떤 바람들은 마음을 골병들게 만든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실내용 특수 막이'들도 필요하다.


  평일 직장 상사의 갈굼을 막아줄 ‘갈굼 막이’, 휴일 아내 몰래 야구를 보더라도 끄떡없을 ‘잔소리막이’ 등이 그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길 것이 아니라 막아야 한다. 이 계절뿐 아니라 사시사철 우리의 정서를 보호해 줄 특수 막이 출시가 무척이나 시급한 이유다.




*사진출처: Photo by Stephen Arnol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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