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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Oct 19. 2023

글을 펑펑 써볼까?

100일의 글쓰기 - 44번째

친환경 글감 패널 설치가 끝이 났다. 우리 집은 도시의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빌라여서 마당이 없는 관계로 집주인 몰래 옥상에 설치했다. 에어컨 실외기 뒤편에 세웠으니 어지간해서는 들킬 일이 없을 것이다.


  글감 패널이란, 쉽게 말하면 일종의 태양광 패널과 비슷한 것이다. 태양광 패널이 전기를 생산해 내듯, 글감 패널은 세워두기만 하면 글감을 생성해 준다. 태양광 패널은 햇빛을 전기로 바꿔주지만, 글감 패널은 햇빛뿐 아니라 바람, 비, 눈 그리고 꽃과 나무 같은 자연의 모든 것들을 글감으로 만들어 준다.


  안 그래도 글감의 씨가 말라가던 찰나였다. 도무지 쓸 글감이 없어서 당근이라도 해야 되나 싶었다. 나로서는 정말이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설치가 완료된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직은 초기 개발 단계의 모델인지라 효율이 높지는 않다. 12시간 정도 가동하면 평균 2~3개 정도의 글감이 생겨난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공짜로 글감을 2~3개씩 던져주다니. 그것도 꽤 양질의 글감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30분도 안 걸려 글 한편 뚝딱이다. 나는 이제 고민할 필요 없이 가만히 책상에 앉아 그냥 휘리릭 쓰기만 하면 된다. 나처럼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물론, 설치하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힘들었다. 지자체에서 시범으로 딱 10개만 설치를 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다. 우리 동네에 글쓰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나처럼 글감 때문에 고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한 모양이었다.


  구청에서 실사를 나왔을 때는 무척 긴장되었다. 담당자는 나의 최근 글쓰기 현황을 확인하는 등 굉장히 꼼꼼하게 이것저것 체크를 했다. 아뿔싸, 댓글과 대댓글 작업을 성실히 하는 것까지 확인할 줄은 몰랐다. 약간의 감점을 받기는 했지만, 최근에 매일 글을 한 편씩 쓴 덕분에 가산점을 받아 만회할 수 있었다.


  최종 10인에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집들이 전기세 부담이 확 줄어드는 것처럼, 이제 나도 글감이 부족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글감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오기 전에 설치가 완료되어 정말 다행이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우리 집에 태양광 패널이 없어서 전기는 펑펑 못쓰지만, 글감 패널이 있으니 글은 펑펑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마음껏 쓰는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을 기대한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그래 맞다. 이건 꿈이다.





*사진출처: Photo by American Public Power Associati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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