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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Oct 21. 2023

사과는 은색이 최고지.

100일의 글쓰기 - 46번째

사과의 계절이 왔다. 빨갛게 익은 사과도 맛있고, 푸릇푸릇한 풋사과도 맛있다. 하지만, 사과 중에서 제일 맛있는 사과는 한 입 베어문 사과 바로 ‘애플’이다.


  나는 애플 빠다. 핸드폰은 아이폰, 태블릿은 아이패드, 노트북은 맥북을 쓰고 있다. 나도 수년 전까지는 갤럭시 핸드폰과 윈도우 노트북을 썼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애플 유저가 되었다. 


  멀쩡하던 휴대폰이 갑자기 고장 나 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지인에게 단돈 7만 원을 주고 낡은 아이폰을 중고로 급히 구입했다. 오래된 모델이었음에도 배터리를 갈았더니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심지어 폐기한 갤럭시와 같은 해에 출시된 모델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때, 애플 제품에 확 매료되어 버렸다. 가격이 비싸고, 국산제품이 아니라는 큰 단점을 상쇄할 만큼 사용감이 쾌적했다. 수명이 꽤 길어서 새 모델을 사야만 치료된다는 아이폰병만 이겨 낸다면,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어 더 마음에 들었다. 


  얼마 후, 코로나 시국이 되었고 한동안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다른 회사처럼 우리도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거기다 내 업무가 아닌데 갑작스럽게 영상 콘텐츠 제작까지 도와야 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업무용 노트북으로 애플의 맥북을 지급해 주었다. 


  아이폰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맥북에 적응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맥북도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이 무척 쾌적했다. 게다가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니 연동성이 뛰어나 업무 효율도 상승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가장 뛰어난 장점이 하나 더 있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스타벅스 입장권*이 생긴 것이다.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주문한 뒤, 2층 창가에 앉았다. 맥북을 펼쳐 놓고 글을 쓰니 이거 완전 폼 난다. 


  뭔가 힙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그렇다. 괜히 허세 작렬이다. 열심히 문장을 써 내려가는데 키보드가 쫀득하니 손에 촥촥 감긴다. 무슨 식 키보드니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너무 좋다.


  창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비친다. 맥북에 새겨진 은빛 사과가 더 눈부시게 빛난다. 세상에 이보다 더 맛있는 아니 멋있는 사과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맥북이 내 것이 아니라는 점뿐. 퇴사를 하게 되는 약 한 달 후면, 이 빛나는 사과 노트북도 반납해야 한다. 젠장, 퇴사의 단점을 하나 깨닫고 말았다. 이 좋은 사과를 당분간은 맛볼 수 없겠구나. 


  아내 몰래 퇴직금으로 하나 사야 하나? 몰래 산 맥북으로 몰래 야구 보면 심장이 아주 쫄깃할 것 같다. 아, 쓰다 보니 이것도 아내가 보면 안 되는 글이 되어버렸다.




*스타벅스 입장권: 스타벅스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맥북 등의 애플기기를 갖춰야 한다는 일종의 인터넷 밈.




*사진출처: Photo by Sumudu Mohottig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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