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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Oct 23. 2023

이상적인 하루

100일의 글쓰기 - 47번째

아침 8시쯤 눈이 떠졌다. 따뜻한 물을 반 컵 정도 마시고, 머리를 감았다. 창문을 열어 숨을 크게 들이쉬어 신선한 아침의 공기를 맛본다. 


  창 밖으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어 다닌다. 아마 출근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도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물론, 운동복이다. 요가 수련을 가기 위해서다.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정류장 쪽으로 걷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 들어갔다. 요가원에 들어서니 한적하다. 항상 퇴근 후, 시간 맞추느라 바삐 요가원으로 뛰어 오곤 했었다. 오전에 여유롭게 걸어와 요가를 하니 괜히 몸이 더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요가 후, 집에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소파에 편하게 앉아 어제 읽던 소설을 몇 장 읽으며 여유를 부려 본다. 다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선다.


  늘 가던 카페가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가볼 생각이다. 거기서 오후 시간을 보내며 글도 쓰고 책도 읽을 예정이다. 아이스 라떼가 맛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급적 하루에 반나절 정도는 밖에 머물려고 한다. 약속을 잡거나 약속이 없다면 이렇게 카페나 스터디 카페에 가서 앉아 있는다. 일을 하지 않으니 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지만, 나란 사람은 집에 있으면 늘어지기만 하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밖으로 나가고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낫다.


  오늘도 글 한편을 써내어 업로드했다. 늦은 여름 시작했던 100일의 글쓰기가 어느덧 200일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매일 글 한편 쓰는 것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숨을 쉬고 물을 마시는 것만큼이나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해가 저물어 가며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카페를 나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트에 들러 두부 한 모를 샀다.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된장찌개를 끓여놓을 생각이다. 퇴근길 지하철 역 주변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이상적인 나의 하루다. 느리고 여유로우며 꿈만 같은 삶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는 그런 삶이다. 그리고 아직은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그저 꿈에서나 이룰 수 있던 이상적인 일상이다. 그렇다 이것은 모두 상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꾸지 못할 꿈이 아니다. 약 한 달여 후, 상상은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게 되는 11월 말 이후, 나는 위에 적은 대로 하루를 살 것이다. 내 하루의 계획표인 것이다. 이 정도면 재벌 부럽지 않다. 


  로또 맞은 인생쯤 되어야 살 수 있는 삶인 줄 알았는데, 막상 적어놓고 보니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에서 직장을 지워버리니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내가 원하던 그런 삶이 드디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이상적인 나의 하루에 직장은 없었다. 퇴사 이후가 벌써부터 너무나도 기다려지는 이유다. 그래 맞다. 그동안 내 삶이 엉망이고, 힘들었던 것은 순전히 직장을 다녔기 때문인 것이다. 역시 때려치우기로 결정하기를 잘했다. 


  그런데 돈은 어디서 구하지?




*사진출처: Photo by Marc Najer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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