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세곡 Oct 26. 2023

프리미엄을 맛보다.

100일의 글쓰기 - 51번째

깊은 밤, 모자를 푹 눌러쓴 나는 주위를 경계하며 편의점 안에 들어섰다. 물건이 입고되는 시간인지 알바생이 정신없어 보인다.


  편의점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유유히 걸어간다. 목표물이 눈에 들어왔다. 금테라도 두르고 있을 줄 알았건만. 생김새가 생각보다 소박하다.


  천천히 손을 뻗어 문을 열려다 나도 모르게 움츠린다. 잘 생각해야 한다. 한번 실행하면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지금 프리미엄 아이스크림들이 진열되어 있는, 일명 편의점 부자존 앞에 서있다. 말로만 듣던 하겐다즈를 사기 위해 온 것이다.


  올여름에 시작된 1일 1아이스크림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이제 판매 중인 아이스크림은 거의 다 섭렵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여전히 나의 입맛은 더 시원하고 더 맛있는 것을 갈구하고 갈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 붙은 ‘하겐다즈 4종 세일’ 이벤트 광고를 보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나인데, 4개를 한 번에 사면 할인을 해준다는 말이 솔깃했다.


  거의 보름 동안 편의점 앞을 서성이다 돌아서곤 했다. 세일을 함에도 내가 사기에는 너무 비쌌다. 아이스크림에 몇 만 원을 태울만한 배짱이 나에겐 없었다. 오늘은 정말 굳은 결심을 하고 바로 코앞까지 왔지만 망설여지는 이유다.



  ‘내 형편에 감히 하겐다즈라니. 저거 살 돈이면 올 때 메로나를 몇십 개 살 수 있다. 이건 돈지랄이 분명해.’


  ‘아니야,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 먹을래? 평생 한 번은 먹어봐야 하지 않겠어? 게다가 너 이제 곧 백수잖아? 퇴사 전에 먹여야 해.’



  내 안의 나는 둘로 나뉘어 격렬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고뇌하던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뒤흔들기 시작했다. 뒤에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알바생의 시선이 느껴진다.


  흠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헛기침을 한 나는 눈치를 보다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힘차게 부자존을 열어제낀다.





  드디어 귀하디 귀한 하겐다즈 파인트 아이스크림을 나의 두 손에 영접했다. 조금이라도 녹을까 싶어 집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식탁에 놓자마자 숟가락을 집어 들고 달려들었다.


  조심스럽게 아이스크림을 퍼내어 입에 넣었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아니, 이 맛은??


  부드럽구우우~ 말랑말랑하구~ 아카시아 꽃향기가 나구~ 참기름처럼 고소하면서~ 하늘 땅.땅.땅만큼 맛있는 맛이었다. 나는 검정고무신의 기영이로 빙의해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눈을 떠보니 이미 아이스크림 한 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마음 같아선 앉은자리에서 나머지 아이스크림도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큰일이다. 아이스크림 끝판왕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진출처: Photo by DLKR on Unsplash, 천세곡의 사진첩




https://youtube.com/shorts/bYeKtZI4lrQ?si=iE7ZLskBeYCATxMU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적인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