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글쓰기 - 48번째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느 날, 수십 년 넘게 지속된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로 국가에서는 생존세를 걷고 있다. 살아있는 노인들을 모두 해당 세금을 내야 하는데 만약 내지 못하면, ‘국가존엄보장센터’라는 곳으로 끌려가 24시간 후에 죽게 된다.
주인공 할머니는 돈이 없어서 생존세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집 앞에 붙은 독촉장을 보고, 자진 신고하기로 마음먹는다. 국가존엄보장센터에서 입소하자마자 할머니의 손목에는 24시간 타이머가 채워진다.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침대에 누워 안식을 주는 약을 투여받고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언제 죽게 될지 확실히 알게 되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센터 안은 카페나 식당 피트니스 등 각종 시설이 있고, 24시간 동안 무료로 이용 가능했다. 몇 시간 후면 죽어야 하는데 먹고 운동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나마도 몇몇 시설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구색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센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곳의 노인들은 모두 24시간 안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에 애쓸 필요가 없다. 어느 누구도 하루 이상 이용할 수 없기도 하고, 시설의 불편함이 있다 해도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클레임도 못할 것이다. 존엄을 보장한다는 센터의 이름과는 어딘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
이런 와중에 할머니는 먼저 입소한 어느 할아버지와 만나 대화하게 되었는데 이상한 소문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곳에서 노인들의 장기를 빼내어 중국에 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국립장기매매센터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할머니는 괜히 더 불안하다.
사실, 그 할아버지는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의 팔에 채워진 타이머가 0이 되는 순간 센터의 직원들이 달려와 그를 끌고 갔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끌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니 할머니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남겨진 15시간을 억지로 기다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 시간들을 보내고 죽음을 맞이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과연 그 시간들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할머니는 시간을 당기기로 결정을 한다. 직원에게 말해 타이머를 5분 후에 안식하는 것으로 재설정한다. 평생을 수동적으로 살아왔는데 마지막 순간만큼은 능동적인 선택을 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마지막까지 존엄을 유지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남유하 작가가 쓴 ‘국립존엄보장센터’라는 단편 소설의 내용이다. ‘존엄사’라는 주제를 현재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연결하여 풀어내니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소설 속 설정이기는 하지만 생존세를 내지 못해 국립존엄보장센터(소설 속 가상 기관)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백번 양보해 존엄한 죽음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존엄한 삶보다는 못할 것이다. 존엄사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살아있을 때 어떻게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과 같은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노인 인구의 증가로 인한 크고 작은 문제들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노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하도록 내몬 것은 돈이었다. 돈이 있었다면 존엄한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이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존엄’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노인들의 삶은 책임지지 않았으면서 죽음만큼은 존엄하게 해 주겠다는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 복지와 생존 문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하는 과제다. 세월이 흘러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인간은 모두 늙고 죽게 된다는 것뿐이다. 내 부모님의 문제이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겪게 될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다운 삶을 지켜 줄 공동체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존엄한 삶을 보장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사진출처: Photo by Vlad Sargu on Unsplash, 네이버 검색 "국립존엄보장센터"